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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창작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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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린 | 11.04.08 조회:333
    봄오는길(시 이소린)
    하교길 항상걷는 시골길 걷다보니 자연스레 생긴길 덜그덕덜그덕 소달구지 소리가 아직 길위에 남아있다 양옆논에는 봄을 알리려고 소리치는 개구리 합창단과 샛노란 웃음으로 나를 바기는 산수유가 그리고 길을 잃지 말라는듯 우리집으로 가는 길에 한걸음 한걸음 마다 떨어져있는 흙덩이들 나는 이길이 좋다 오래전부터나의 친구가 되버린 매년 봄이오는 소식을 전해주는 우체부들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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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 11.04.06 조회:369
    건이님의 롤모랠(롤모댈)
    나의 롤모델 저의 롤모댈은 삼성 에버렌드 동물원에서 수의사로 근무하고있는 오석현 대리입니다 오현석 대리는 1가지 조언을했는데 그조언이 수의사란직업을 선택함에 앞서 진정으로 동물에 대한 열정과 정성를 쏟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었했습니다. 수의사는 어떤 일을하냐면 주로 동물원에서 동물진료와 방역 예방관리이라고합니다. 수의사로서 가장보람을 느끼는 일은 자기가 진료를 해준 아픈 동물이 다 나아서 뚸어다니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나중에 수의사가 된다면 그 보람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수의사의 매격은 동물과 교감을하며 진료를할수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수의사로서 가장 슬픈점은 자기가 수술을 하고있는동물이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제가 수술하고있는 동물이 갑작이 나의 실수로 죽는다면 정말 슬플것같습니다. 제가 오현석 수의사한테 본받고 싶은점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끈기를 가지고 포기를 하지 않는것입니다. 오현석 수의사님께서 수의사가 되고십어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그조언이 모든직업이그러하듯 수의사란 직업도 확고한 직업관이 있어야지만 즐거운 직업으로 인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많은 체험을 한후 자신과 맞는 적성을 선택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가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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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 11.04.06 조회:354
    건이님의 위대한 자서전입니다 혹시나 읽으시고 눈물흘리지마세여ㅎㅎ (1)
    내가 초등학교때의일이다 정말친한친구였던 친구가 있는데 그친구 이름이 이호근이다 어느때와같이 호근이와 놀고 집에들어가는데 엄마가 "건아 3학년 끝내고 전학가자." 처음에는 그냥 끄덕하고 말았는데 점점 전학이라는단어가 무섭게느껴지고 그냥끄덕였던것이 후회되었다 '만약 전학가면 회인초친구들은 못보나??' 라느 생각도했다.그리고 그사실을 호근이한테 알려줬다 그러자호근이는 정말슬퍼했다 그표정을보니깐 나도 슬퍼졌다. 교회에스 끝나고 호근이랑 신나게 놀고 난 호근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안녕" :" 이제 못보는거야??" 그리고 4~6학년까지 엄마를 원망했다 그리고 1년이 흐르고 중1이 되서야 엄마 마음을 알았다 전학을간 이유는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말라는 엄마의 깊은뜻이 담겨있었다. 그후 난 엄마를 존경하게되었다. 비록 지금 회인중으로 다시 전학왔지만 지난 4년의 세월이 나의 끔을 바꾸게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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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동의 | 11.04.05 조회:371
    자서전자서전자서전자서전자서전자서전자서전자서전자서전자서전
    1997년 ~ 2003년 나는 충북 청주시어떤 산부인과에서 A형으로 태어났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두살까지 청주에서 사라닥 그때 회인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내가 사는 죽암리에는 나랑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승민이형과 성민이형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랑, 우리형,승민이형, 성민이형이 매일 같이 놀았다. 동네를 돌아 다닐때마다 줄을 서서 돌아다녔는데, 성민이형이 맨날뒤에만 세워준다고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가 5살이 되던해에 승민이형과 성민이형이 유치원에 입학하고나니 너무 심심해졌다. 그래서 난 회인초등학교 급실소에서 근무하셨던 엄마에게 부탁해서 여름부터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6살때 유치원을 정식으로 입학 했다. 2004년 ~ 2005년 2004년에 집을 부시고 새로 지었다. 그전에 집은 너무 좁았는데 새로 진집은 넓어서 좋았다. 맨처음에 아버지가 커다란 시멘트 바닥에서 못으로 선만쭉쭉그을 때는 몰랐다.그런데 아버지가 그선들이 방을 나누어 놓은거라고 하셔서 좀 놀랐다. 집을같은장소에 지은것이라 집이 완성될때 까지는 집 가까이에 있는 마을 회관에서 지냈다. 그런데 회관에 사람들이 많이와서좀시끄러웠다. 그렇게 몇달간 지내다가 형이랑같이 유치원에 다녀왔는데 엄마랑 아버지가 새로 지은집으로 가구와 물건들을 옮기고 계셨었다. 그래서 나도 가방을 갖다놓고 짐을옮겼다. 1시간만에 짐을 다 옮긴후 집안을청소하고 방들을 다 살펴보니까형방과 내방이 따로 있고 안방, 거실도있었다. 화장실은 밖에것까지 3개이다. 새집에 들어가니까 냄세가 좀났지만 넓고, 마당도 있어서 기뻣었다. 몇칠후에 시계도달고 밥상도 가져왔다. 새집에들어간지몇칠 안됬을때 나는 집으로 왔는데 새집으로 안가고 회관으로 간적도 많았다 그리고 옥상도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전집에는 옥상이 없었느데 생겨서 심심할때면 옥상으로올라가서놀았다하지만 지금은옥상에 개들이 똥이라는 무언가를 싸놓아서 조심해야한다. 왜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집에서 개들을 풀어놓면 똥을 옥상가서 싼다. 난개똥 밑에서 사는건가? 하여튼 기분은좀 더럽긴하다 그래서 개들도 많이 혼났다. 혼났는데도옥상가서 똥싸는걸보면 개들은 의지가 참 강한것 같다. 2005년 ~ 2011년 4학년때친구들과함께 동아리 축구대회에 나갓었다. 처음나가는 대회였는데 준우승을 하였다. 내가 골키퍼였는데 승환이가 골대옆에 있다가 공에 맞아서 웃었던 기억도 난다. 마지막에 아쉽게 준우승을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5.6학년때는 별로 기억에남는일이 없는것같다. 중학교에입학해서 1학년여름방학때 희승이 재진이와 같이희승이네 집에서 자면서 곤충채집도하고놀았던 기억도 있다. 채집할때는 고속도로로 갔는데 밤에가니까 차도 없고사슴벌레장수풍뎅이도많아서좋았다. 거기가서 가로등 주위를 날아다니는 참새만한 나방을봤는데 참나무 나방이라고 책에 나와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큰 지네도 보고, 딱정벌레도 많이봤다그리고 회인가서놀기도 했다. 새벽2시쯤 회인가서 놀고 있으니까 민섭이가 나와서 같이 놀았다 새벽에는 회인에 차가 하나도 안다녀서 농구를 하고 놀았다. 새벽 4시에 초등학교가서 족구를 하다보니까 해가 떳었다. 지금은 중2고 그냥 평범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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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옥 | 11.04.05 조회:322
    자서전(김주옥)
    나는 1997년 11월 21일 청주 모병원에서 태어났다 몸무게와키 정상에다 혈액형은 O형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서울에 살다가 청주에 있는 외갓집에서 살았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외할머니와친할머니가 자주 돌보아 주셨다 외할머니는 엄마와 같이 나를 씻기다가 탯줄에 물이 들어가서 외할머니가 버스를타고 병원에가다가 한 정거장 뒤에 내리셔서 날 안고 한정거장을 뛰셨다 그래서 나는 다행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친할머니는 나를 2살때부터 지금까지 키워주셨다 나는 7살때 회인 병설 유치원에 입학하고 6학년때까지 다녔다 6학년때 학교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유미가 몸살로 열도 많이나고 감기가 걸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숙소에서 유미의 물수건을 왔다갔다하면서 보살펴주었다 그 다음날 유미는 다 나았는데 오히려 나는 유미에게 감기를 옮았다 그래서 감기를 났느라 고생했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 5학년때 전학을 왔다 전학을 간 혜진이가 다시 전학을 왔다 그리고 2학년때 인영이가 전학을 가고 이건이 전학을 왔다 이건은 4학년때 전학을 갔다가 다시 왔다 인영이랑은 예전부턴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였다 그런데...6학년때부터 친하게 되었다 그래서 청주도 같이 놀러가고 우리집에도 자주 찾아오고 데이때마다 사탕,초콜릿,빼빼로를 같이 사러다니고 버스도 같이 기다려주고 라면도 매일 학교끝나고 사먹곤 했다 그런데 인영이가 전학을 가니까 좀 허전하고 우리반이 살짝 조용해진 것같다 하지만 연락을 자주해서 괜찮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서 예전 정진명 국어 선생님이 충북공고로 발령이 나셨다 정진명선생님은 침도 잘 놓으시고 책도 출판하셨고 정말 재밌는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지금의 국어선생님도 잘 가르쳐주셔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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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원 | 11.04.05 조회:310
    자서전
    자서전 2학년 오 지원 나는 1998년 1월2일 충북 대학교병원에서 태어났다. 나는 다른 아이들 보다 작게 태어났다. 내가 4살 때 대전에서 잠간 살다가 여기로 이사를 왔다. 내가 5살 때 회남 유치원에 하루 갔다가 내가 울어서 회인 병설유치원에 입학을 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그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해졌다. 유치원 때 내가먼저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어떤 애가 자기 꺼라 고해서 싸운 적 이었다. 초등학교1학년 에 입학을 했다. 글씨를 써도 삐둘빼둘 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을 하니 예전 보다는 나아졌다. 4학년 때 처음으로 야영 을 같다. 정말 재미 있었다. 6학년 때 이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마음을 먹었다. 중1입학을 했다. 설렘 반 두려움 반 이였다. 이젠 진짜 중학교 1학년에 됬으니깐 열심히 해야지 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됬다. 1학년2학기가 되니 이젠 아니다. 다시 새로운 해가 찾아 왔다. 현재 초등학교 때 공부를 안한 것을 후회 하고 있다. 지금 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서 열심히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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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예진 | 11.04.05 조회:317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ㅎ(자서전)
    나는 1997년 7월 28일에 충북 어딘가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4년후 아빠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우리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후에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병원을 갔다. 그런데 어떤 한 아리가 계속 혼자서 장난감을 갖고 놀길래 내가 그아이의 손을 꼬집었다고 한다. 그리고 6살때 나는 드디어 병설 유치원에 들어갔다. 나는 좀 어색했는데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2학년때 어떤 아이가 나, 수민이와 여러 친구들을 왕따 시켰다. 나는 너무 슬펐다. 그아이는 내가 보기에는 착해보였는데 그아이는 내가 싫었다보다 그래서 나는 그아이가 너무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떤 복수를 할까 생각도 해보고 그 아이에게 왕따 시킨 것을 후회 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아이처럼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를 시키면 안되는 생각이 들었다. 또 1년후에 내가 3학년이 되던날 처음으로 내가 육상대회를 나갔다. 나는 처음 나가는 대회라 너무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하는거라 그리고 지금 선배인 영주언니랑 같이 뛰는거라 난 꼴등을 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예상외로 난 4위을 했다. 너무 기뻤다 그래도 내가 상을 못 타니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영주언니가 상을 타는 것을 보니 덜 아쉬웠다. 또 1년후에 나는 또 도대회를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4학년이라 영주언니는 다른 것을 뛰게 되었다. 그래서 난 이번에는 꼭 상을 타겠다는 의지로 뛰었다. 그 의지가 불타올랐는지 나는 2등을 했다. 그래서 난 너무 기뻤다. 그리고 난 도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나는 도대회가 처음이라 너무 떨렸다. 그래서 나랑 군대회때 같이 뛰었던 수정초 한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나는 다른 조로 되어서 뛰었다. 나부터 뛰었는데 아깝게도 4등을 하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뛰었다. 그런데 그 아이도 4등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아깝다고 하면서 위로를 해주었다. 그리고 5학년때 나는 또 다시 나갔다. 그런데 그친구가 안나왔다. 난 그 친구를 못 볼꺼라는 생각에 너무 아쉬웠다. 아직 덜 친해졌는데 이렇게 되어서 너무 서운했다. 그리고 난 또 영주언니와 같이 뛰게 되었는데 영주언니는 상을 타고 난 상을 못 탔다. 그래서 난 내년에는 꼭 타겠다는 의지로 내년까지 기달리기로 했다. 드디어 6학년! 난 다시 뛰었다. 그런데 100M에서 같이 뛴아이랑 200M에서 같이 뛴아이랑 같이 도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 아이들의 이름은 수인이와 혜경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놀았다. 그리고 계주를 뛸려고 하니 세명 봤게 없었다. 그리고 한아이가 들어와서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다. 그아이의 이름은 지희였다. 그 아이는 나에게 좀 특별한 아이인것 같았다.그리고 나와 그 아이들은 같이 뛰었다. 그리고 유미는 멀리뛰기를 2등을 해서 같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다 떨어지고 계주만 간발의 차이로 2등을 했다.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는날! 난 선배들을 거의다 알고 있고 해서 좀 마음 편하게 들어갈수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외로 선배들은 엄청 착해졌다! 난 신기하고 너무 잘해줘서 너무 심하게 까불어댔다. 그리고 한오빠한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몇 개월뒤... 졸업식. 난 선배들이 상받을때 난 곰곰히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졸업한 선배들에게 존경하지를 않았던거 같았다. 그래서 난 너무 미안했다. 지금 깨달아서 난 바보인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에 만날때 그 미안함을 생각하며 잘해 줄꺼라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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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병열 | 11.04.05 조회:308
    나의 동생 (1)
    나의 동생 내 동생 늘 난 녀석을 '돼지'라 부른다. 언제나 줏어 먹어대는 나의 동생 무겁다. 이건 녀석이 아무거나 먹어대기 때문일까? 내 동생 녀석의 이름은 잊혀 졌다. 나는 언제나 녀석을 돼지라 부르고 녀석은 나와 우리 가족의 사랑을 먹는 돼지이고 녀석은 12kg. 이건 나와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탓이겠지. p.s. 시를 써둔 종이가 없어 져서 그자리서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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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진 | 11.04.05 조회:320
    짲어전 (1)
    나의삶 태어날때 부터 8살까지. 1997년 3월 15일 충북에서 태어남. 평범하게 사라아감. 그러다가 돌이지나자 마자 감기에 찌들어삼. 그래서 어렸을때 수술로 목에서 먼가를 짤라냄. 그 다음부터 잘 감기가 걸리지 않음.그런데 일반 아이들 보다 훨씬 늦게 걷기 시작. 약 태어난지 12개월 만에. 걷기시작함. 그리고 5살때 부터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 그러면서 갑자기 애가 악에 찌듬 욕을 뱉기 시작 그리고 유치원에서 잦은 싸움을 시작. 8살이 되자 더 폭력적으로 변해 싸움을 밚이함. 9살때부터 13살까지. 9살때는 어렸을때 부터 해오던 축구에 미쳐서 살기시작. 매일 축구를함 그러다가 처음으로 게임을 스페셜포스를 시작 그리고 약 2년동안 스페셜포스를 하다가 서든어택을 시작 그러면서 더폭력적으로 변함. 그러다가 육상대회에 나가서 80m우승. 그러다가 3학년때 형들과 동아리 축구를 나감. 처음 나가서 1골을 넣고 준우승을함. 그리고 께속 축구를 해서 동아리 축구를 4학년때 나가서 골은 많이 넣는데 도 준우승함. 그리고 스포츠클럽에 나가서 이번에 드디어 축구를 우승함. 또 동아리를 나가서 또 준우승을함. 그러다가 또 육상을 나갔는데 단거리에서 망해서 800m로 바꿧는데 망해서 육상은 포기함.그러다가 과거를 반성하고 착해지기 시작. 14살때 부터 15살까지 중학교를 입학하고 깝돌이가됨. 3학년 형들에게 깝치면서 형들과 친해짐. 그리고 형들과 축구를 매일함.그리고 체육쌤의 반협박과 반권유로 육상대회와 인라인스케이트를 나감. 육상대회는 800m와1500m를 나가서 3등과 2등을함. 그리고 인라인 스케이트는 쿨하게 말아먹음. 그리고 또 축구를나가서 2판중 2판을 다이김. 그리고 얼마전 육상대회를 나가서 1500m를 꼴등함. 그런데 2등함. 2명이 달림. 그리고 지금 평화롭게 비폭력주의자로 살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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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민섭 | 11.04.05 조회:329
    자서전 (1)
    나는 1998년 2월 20일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태어났다. 나는 어렸을 때 이렇다고 할 만한 기억이 남지 않았다. 나의 제일 옛날 기억은 5살때 우리집 문을 여는 것이다. 나도 그게 왜 기억에 남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의 기억은 5살때 부터이다.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꽤나 위험한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고 한다. 6살 때는 도로에서 뛰어놀다가 차와 교통사고가 나고, 7살 때는 전봇대에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턱이 긁혔다. 그리고 8살때는 뛰어다니다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 기억도 있다. 나는 중앙리에서 아이들과 많이 놀았었는데 안 가본 곳이 없는것 같다. 심지어 하수구 안에도 들어가 본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불리는 별명이 '책벌레'인데, 내가 책벌레인 이유도 어렸을 때 돌아다녔던것 뿐이다. 그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애들이랑 전쟁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멋있는 말 없나?' 하고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을 보았다. 그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때 그생각을 한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랬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서 나는 집중력이 좋아졌고, 성적도 꽤나 좋게 나왔다. 나는 숙제는 안했어도 책은 거의 꼬박꼬박 읽었다. 나는 내가 책을 읽는데 공부하는 시간을 썻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앞으로 성적이 떨어져도 책을 읽는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나의 자서전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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