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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창작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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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동의 | 11.04.04 조회:361
    롤모랠~ (1)
    제 롤모델은 프랑스의 유명한 곤충학자인 장앙리파브르 입니다. 파브르는 남프랑스 생레옹의 시골 농가에서태어났습니다. 파브르는 집이 가난해서 장난감이 없었지만 어렸을때부터 곤충을 좋아하여 생김새를 관찰하고, 곤충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싫어하는 벌레들을 키우기도 했습니다.파브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공으로 일하게 됬는데, 첫월급으로 곤충과 꽃, 그리고 새들을 노래한 시집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는 철도공으로 일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852년에 국립 중학교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교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가난했지만 파브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곤충들을 연구하고 관찰하는것에 삶의 보람을 느꼇다고 합니다. 그렇게 관찰하고 연구한 것을 적어서 <자연 과학의역사>라는 논설문을 냈습니다. 파브르는 이 논설문을 낸후 파리에 가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후 파브르는 56세에 은퇴해서 연구를 계속 해서 곤충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파브르가 84세가 되었을 때 28년만에 곤충기 10권을 완성했습니다 이10권의 곤충기가 우리들이 잘 아는 '파브르곤충기입니다.' 이곤충기로 인해 그는 세계적인 곤충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파브르는 한가지 일에 대해서 집중을 많이하고, 일상적인것에 대해서도 세심하고 정확하게 탐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줄도알았으며 가난했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는 파브르의 이런점을 본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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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아 | 11.04.04 조회:352
    선생님 저 아이디 가 기억 안나서 박상아거빌렷어요 (1)
    나의삶 1998내가태어낫다글고2003년에유치원에입학하엿다 유치원대 재진이을처음보앗는데그대는귀여웟는데지금은...그리고유치원에갔이다니던친구들은아직도같이다니고있다몇몇은 전학가였다2006초등학교에입학하엿다초등학교대선생님이딴학교로가서몇몇애들이울엇었다난그대감성이없는지실실웃기만하여다 2학년대는구구단외우기을하엿는데그대내가잘못외어서남아서외우기만하엿다그대선생님이엄격하여서무서웟는대다외우니가과자을주었다그리고5학년인가?그대동아리축구을나갓는데골대옆에잇다가공에맞앗다너무아팟다울지는않앗다난남자니가ㅋ 그리고6학년대동내에서놀다가크게다 그래서배치고사도못보고병원에만잇엇다학교안가서좋앗는데개속병원에잇으니가학교에가고싶엇다 중학교입학전에퇴원하고중학교입학할대열심이해야지라고결심햇다그런대개속하다보니초등학교대랑똑갔다그리고2011년대누가야자을하자고해서야자대열심이하려고했는따라가는데재진이옥상개단으로가서내가따라가는데중간쯤에서누가불꺼서아무것도안보였다 그래서난내려오려다안보여서실수로깻다그래서재일먼저수학선생님에게말을하고화분을치웠다그리고내일교장선생님에게말할려고했는데너무말하기무서워서청소시간대용기내어서말했다그대너무죄송하였다이재부터장난을치면안돼겠다그리고눈치좀길러야핫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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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미 | 11.04.04 조회:342
    자서전(고유미) (1)
    나의 자서전 1학년 고 유 미 1997년 5월 8일 지금 외갓집 식구들이 살고 있는 인천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얼래 예정일이 4월 중순이 였는데 휠씬 지난 보름 뒤에 약의 힘을 빌려 간신히 태어났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회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살게 되었냐면 엄마, 아빠가 대전에서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엔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심하게 반대 끝에 만난 것이다. 시골에 가게 되면 힘들다고 말이다. 결혼 뒤 아빠의 진짜 모습, 성격이 나타나고 안 맞는 점이 많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상황에 태어 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내가 있었다. 그 뒤 엄마는 후회, 죄책감 때문에 인천 외할머니 댁에서 잠시 있게 된다. 회인에 있던 아빠가 인천 까지 찾아와서 엄마와 나를 다시 회인으로 데리고 온다. 그 뒤 내가 3살 쯤 때부터 동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시작한 동시에 죽임을 당한 동물들이 속속 들어난다. 난생 처음으로 죽이게 된 첫 번째 동물은 병아리 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병아리가 귀엽다고 한번 들었을 뿐인데.... “엄마~ 얘 자나봐~” ......“유미야 병아리 목을 꽉 잡으면 어떡하니 병아리 죽어잖아!” 라고 엄마께서 말씀해 주셨다. 조금 시간이 흘러 각종 피플, 똥개, 슈나이저, 시츄, 치와와는 아빠 아는 친구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씩 가지고 오셔서 키우게 되었다. 똥개와 피플은 밖에서 살았고 애완견 슈나이저, 시츄, 치와와는 잠시 키우게 된다 피플은 아빠가 좋아하는 돈거리, 똥개는 머..... 시골이니까, 슈나이저는 재가 이뻐서 좋아 하던 개, 시츄는 너무 나부대서 금방 내 옷이 더러워 졌다. 치와와는 좀 특별했다. 모르는 사람이나 차가 들어오면 쫓아나가 사라지거나 우리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쫓아 다니면서 짖는 개였다. 그게 너무 지나쳐 어 느날 내가 아빠와 같이 동네 아줌마 들과 같이 병원에 가기로 했다. 아빠가 쫓아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는데 집에 있으면 심심할 거 같아서 차에 올라 탔다다. 그러니 이 개가 나하고 놀자고 차 뒤를 회룡가든 까지 막 쫓아 뛰어 왔다. 개가 얼마나 빠른지 아빠가 따돌릴 려고 속도를 높혔는데 그래도 그 조그마한 몸에 그 개가 차가 설때까지 쫓아왔다. 잠시 회룡가든에 멈쳐 아줌마들은 태우고 가려는데 자꾸 날 보고 가지 말라는 신호란 들이 출발 하려고 해도 다른 때 처럼 옆으로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을 갔다 돌아 오는 길에 아까 문을 닫고 출발 했던 회룡가든 옆에서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피가 바닥에 가득 묻어 있었다. 안타까워서 다가가서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늦은 저녁이라 아빠가 차 밖으로 나가 그 강아지를 급하게 치우느랴 다리 밑으로 버리고 오셨다. 그 날 이후 하루도 빠짐 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한 4개월이 지나 2학년 여름방학 전 계속 마음에 걸렸던 개를 찾아보고 싶어 다리 밑으로 내려와 찾아 보았다. 하지만 그 날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던 터라 찾는 건 무리 였다. 풀 숲을 아무리 뒤져 봐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죄책감만 가지고 집에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영리하고 집을 지키던 개가 사라지니 제일 이뻐 했던 엄마가 가장 아쉬워 하셨다. 내가 같이 안갔더라도..... 정말 내 생에 가장 후회가 되었다. 그 뒤로 개구리, 닭, 병아리, 고양이, 오리, 토끼, 멧돼지, 까치, 참새, 뱀, 햄스터 등 많은 동물을 길러 보았는데 2번째로 희생당한 것들 중 가장 생각나는 것이 바로 고양이다. 느타리 버섯을 할 때, 내가 3학년이 였을 때 버섯을 팔고 오는 길에 어떤 장사하는 아줌마께서 새끼 고양이를 선물을 주셨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사건이 일어 난다. 밎에 층 문고리에 고양이를 묶어 놓았는데 내가 모르고 들어 갔다. 나 올때 고양이가 있는 줄 모르고 그만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세게.... 그 충격으로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 땐 나도 어느 정도 컸을 때라 너무 물쌍에 울기도 했었다. 그 땐 꼭 내 손으로 묻어 주고 싶어 호미를 들고 뒷산에 땅을 파 묻어 주었다. 그 뒤로도 계속 되었다. 아빠께서 산에 송이버섯을 따러 갔다 내려 오시는 길에 뱀을 잡아 집까지 가지고 오셨다. 그렇게 3일 동안 학교 갔다 오면 인사도 나누었던 사이가 단 4일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학교갔다 온 사이에 불쌍하게도 할머니와 아빠가 구어 먹었다는 것이였다... 정말 나에겐 충격 이었다... 그리고 시골이라면 꼭 있는 닭 직접 부화하는 모습도 보고 뛰어 다니는 것도 보고 성장하는 것 까지 보았다. 하지만 그 사이엔 무서운 죽음이 있다. 엄마께서 막 깨어 나오고 있는 알을 까주지 말라고 신신 당부 하셨지만 빨리 병아리를 보고 싶은 마음에 결국 뜯고 만다. 피부에 상처를 입어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 병아리들은 잘 크고 있을 때 족제비나 삵, 쥐가 와서 잡아가 곤했다. 나머지 살았있던 병아이가 커서 닭이 되었을 때 컸다고 야생동물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야생동물 보다 무서운 사람들... 닭을 끈에 매달아 ‘퍼덕퍼덕’ 날개 짓하는 것이 끝나고 다리가 땅을 향하고 있을 때 끈을 풀러 준다. 그러고 나선 뜨거운 물에 ‘푹’ 담가 목욕을 시키고 털을 뽑아주고, 목을 자르고, 몸을 가르고, 꺼내고 난 이 광경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유치원때부터 봐 온 걸로 알고 있다. 닭 말고도 키우던 동물중 토끼, 개, 맷돼지 도 있다. 이모할머니께서 주신 토끼는 새끼도 낳곤 했지만 날 때 마다 어미, 아비 토끼들이 잡아 먹곤 했다. 이 것도 내 탓이다. 내가 토끼장에 안들어가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면 이런일은 없었을 텐데... 그래서 엄마가 새끼도 잘 모키우고 매번 죽이기만 한다고 확 잡아버린 것이다. 죄책감이 또 들어지만 토끼가 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토끼의 귀 양쪽을 잡고 , 나무대기를 들고 머리를 때렸다. 그걸로는 부족한지 쇠파이프를 들고 때리는 아빠의 모습을 보았다. 보지 말아야 되는 걸 알았지만 나도 모르게 볼 수 밖에 없었다.... 토끼는 닭과 달랐다. 뜨거운 물에 담가 뽑는게 아니라 가죽을 벗기는 것이였다. 그 가죽은 나무 위에 말려두다 쓸 모가 없다며 버려졌지만 그 색깔과 모양이 생각난다... 개는 4학년 때부터 였다. 어느 날부터 한 마리 씩 어디서 데리고 와 전봇대에 매달아 보내더니 이 아저씨들이 재미가 나셨나 매년 맛있는 개들을 데리고 와 나무에 매달고 있다. 그중 가장 생생히 남는 개는 민섭이네 개 2마리 지금 까지 죽는 동물들을 보아 왔지만 이건 달랐다. 나무에 올리기 전까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올리는 순간도 꼬리를 쳤다. 하지만 그건 오래 가진 못했다. 한 10초 정도 끈이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돌더니 그 움직임 마저 멈쳐 버린거다. 너무 너무 불쌍했다. 또 맷돼지는 6학년 때였다. 이 돼지도 아빠 친구께서 주신 것이다. 멧돼지 새끼도 보고 했지만 어미가 갑자기 아퍼 젓을 먹지못해 그만 새끼들이 죽고 만 것이다. 바로 꺼네 우리가 돌보아 졌으면 됐었는데..... 너무 늦인 상태였다. 그뒤 가을 때 였다. 학교에 갔다 돌아와 보았더니 피 비릿네가 진동을 하였다. 무슨 일인지 가보았더니 경운기엔 피 자국이 온 천지 였다. 엄마께 여쭈어 보았더니 아저씨들이 총을 가져와 쏴 죽여서 잡아서 팔았다는 것이다.... 이 것도 충격이였다. 쇠파이프로도 모질라 아예 지금은 총으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잘 크던 오리 3마리는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체 없어지고 햄스터는 내가 고양이와 장난 치다 고양이가 햄스터를 낚아 채가고 한 마리는 내 생일날에 온 주옥이가 한 마리를 달라 해서 할수 없이 줬던 햄스터는 스트레스로.. 떠나고 개구리는 머.... 아저씨들이 잡아오면 소금물로 기절시키고 뜨거운 물에 감그면 기절했던 개구리가 냄비 안에서 서로 살겠다고 뛴다. 잘못하면 개구리가 가끔씩 튀어 나온다. 그래서 냄비에 넣을 땐 넣은다음에 바로 뚜껑을 빨리 닫아야 된다. 안 그러면 대 참사가 일어난다. 또 까치는 아빠께서 복숭아밭에서 주어왔다. 날지 못하고 서있는 것을.. 치료해 줄려고 약도 발라 주고 했지만 끝내 죽고 만다..... 마지막으로2009년 11월이 이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일이 지나고 고모들이 우리집에 있을때 갑자기 날라 들어온 참새 한 마리 아무리 쫓아 내 보려고 해서 나가지 않던 참새 문이란 문을 다 열어 놓았는데 희한하게도 사람이 가까이 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나가게 된다. 그 뒤로도 지금 까지도 계속 가끔씩 찾아와 집안을 기웃거리다 간다. 그래서 난 항상 겨울에 먹이가 없을 까 쌀도 한 주먹씩 난간에 놔 주곤한다. 그렇게 이 참새는 할아버지 참새라 불러졌다. 앞으로도 계속 와 주었으면 좋겠다. 이 참새 마져도 죽는다면 난 너무 책임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참새를 꼭 지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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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희승 | 11.04.04 조회:351
    자서전 (1)
    1997년 4월 30일에 청주 한국병원에서 내가 태어났다 태어날때 O형이고 몸무게는 3.9Kg이엿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무겁게 태어낫지만 지금은 뚱뚱하지 않다. 나는 유치원 입학 전까지 거의 아무런 기억이 나지않는다. 이때까지 기억나는건 유치원 입학 후부터 이다. 내가 유치원때 엄마와함께 치과에 가기로한날 학교버스에서 내리자마다 건너편에 엄마가 계신곳으로 뛰어갔는데 학교버스 뒤쪽에서 차가 오는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가다가 차에 치였다. 그래서 치과에 가지않고 그냥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몸은 아무 이상없엇다.차에 치엿는데 괜찬은게 신기햇다. 그리고 나를 친아저씨가 미안해서 마트에가서 장난감도 사주고 많이 사줬다. 그리고 내가 유치원때 토요일로 기억한다. 일찍끝나서 밖에 나가보니깐 비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비를 맞지 않고 빨리 학교버스에 타려고 학교버스로 달려갔는데 학교버스 계단에서 미끌어 져서 학교버스계단 모서리에 입을 박아서 입이 찢어졋다 그래서 병원에가서 입속을 여러번 꼬맺다 내가 1학년때 미술학원에 다녓는데 미술학원앞에 시멘트로 된 큰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미술학원이 끝나고 심심해서 엄마가 올때까지 친구랑 거기서 놀앗는데 동그랗고 커다란 시멘트가 있었다 그거를 친구들끼리 굴리고 놀았는데 친구중에 누가 큰시멘트를 밀어서 내말이 끼었다. 그래서 1학년때 발톱이 빠지고 깁스를 했었다. 그리고 내가 2학년때 박재진이라는 사악한아이의 영향을 받아서 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재진이는 어렷을때 부터 욕을 참 맛깔나게 햇던거같다 그리고 재진이는 어렸을때와 지금 달라지지않은점은 아직도 욕하고 때리는건 여전한것같다.그때 재진이의 영향을 받지않앗으면 내가지금 이렇지 않을수도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내가 2학년때 축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학교가 끝나면 학교버스 올때 까지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곤했다 그때 축구에 흥미를 가지지 않앗으면 지금 축구를 많이 하지 않앗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4학년때 친척들과 해수욕장에 갔는데 수영을 치다가 파도때문에 물에 빠졋엇는데 간신히 수영을 쳐서 빠져나왔다 그래서 이제는 해수욕장을 잘가지 않는다. 내가 5학년때 축구대회에 나갔다 동아리축구대회에 나가서 준우승을 했다 준우승을 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우리반끼리 나가서 준우승을 해서 너무 기뻤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다시한번 동아리 축구 대회를 나갔는데 준우승이라도 할줄 알앗는데 준우승도 못하고 예선탈락을 해서 많은 충격을 먹었다. 내가 초등학교6학년때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후배들과 헤어져서 아쉽긴 했지만 졸업을 해서 기뻣다 14살중1때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를 들어와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중학교를 와보니 처음엔 초등학교가 그리웠지만 지금은 중학교에 적응을해서 중학교가 더 좋은것같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동아리축구대회를 나갔다 원래 1학년만 나가야하는데 인원이 부족해서 2학년 몇명을 넣어서 같이 나갔다 동아리 축구대회에가서 두팀이랑 했는데 우리학교가 모두 다 이겼다 원래는 다이기면 도대회까지 나갓어야하는데 1학년 인원이 부족해서 나가지 못한점이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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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진 | 11.04.04 조회:342
    로올모오데엘 (1)
    나의 롤모델인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Lionel Andrés Messi, 1987년 6월 24일 ~ )는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 출생의 축구 선수로 프리메라리가의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다. 그는 22세의 나이에 최연소이자 최다득표로 발롱도르(Ballon d'Or)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그 이듬해에도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2년 연속 수상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 이전에도 수 차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후보에 오르며 현 세대 최고의 축구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FIFPro와 월드 사커 매거진 최우수 유망주로도 뽑힌 바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능력은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견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마라도나는 메시를 그의 후계자라고 선언한 바 있다. 메시는 어린 나이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FC 바르셀로나가 그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발견했다. 바르셀로나가 그의 성장 호르몬 장애를 치료해줄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스팀을 떠나 2000년 그의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했다. 2004–05 시즌 데뷔로, 그는 라 리가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으며 또한 최연소 리그 골도 기록했다. 메시가 데뷔한 해에 FC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프리메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달성했다. 메시는 2006–07 시즌부터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정규 주전멤버가 되었고,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리그 26경기에서 14득점을 기록했다. 2008–09 시즌에 메시는 38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결과로서 2009년 발롱도르, 2009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 2009년 FIFA 올해의 선수상, 베스트 11에 모두 선정되는 등 축구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을 거머쥐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09–10 시즌에는 더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이며 53경기 47골 14도움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호나우두가 세웠던 골 기록과 동률이었으며, 출장시간에 비하면 그를 훨씬 능가하는 수치였다. 그 많은 득점 중 페널티킥은 단 하나에 불과했다. 메시는 200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전의 두 골을 포함 총 여섯 골을 기록하여 득점왕에 올랐다. 그 직후 그는 아르헨티나 성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다. 2006년 메시는 월드컵에서 뛴 최연소 아르헨티나 선수가 되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후반 30분에 교체 투입되어 후반 43분에 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의 6-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다음 해에는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그의 성인 국가대표 경력 중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때 스페인에서 국가 대표팀의 보강을 위해 메시의 귀화를 시도한 바 있으나 메시는 자신의 병마를 해결해 준 스페인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메시는 세계에서 연 수입이 가장 많은 축구선수로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던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축구선수로 랭크되었다. 나의 롤모델인 메시가 나에게 주는 교훈은 여러가지이다. 그의 키는 169CM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마 그는 지금 세꼐에서 가장잘하는 축구선수가 되있다. 그리고 어린나이에도 큰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기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다. 다른것도 많지만 넘 길어져서 그만 쓰겟다. 이글 읽고 모두 메시 조아할까바 걱정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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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영주 | 11.04.04 조회:332
    내가 사랑하는 사람 (1)
    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사람의 사람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삶도 사람이 있어야 삶이 아닌가 사람의 그늘 밑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다 나는 사랑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사람의 사라이 되어주는 사람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마음도 사랑이 있어야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짖는 사람을 보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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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선 | 11.04.04 조회:320
    매미 이미선 (1)
    이 찜통 더위에 찬물로 사워를 싹하고 나와 상쾌한기분~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자려는데 이무슨 주문인고~ 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맴 헐 또? 이것들은 잠도 없나 아 참자 참어 내가 제들이랑 싸워밨자 내가 져 그래서 눈 꼭 감고 잠을 청하는데 악~~~~~~~~~ 안돼겠어 이놈의 매미를 !!!!! 잠시후...... 난 다시 땀에 쩔은 나의 모습으로 본다. 매년 듣는 이주문 너무 적응 않됌 ㅠㅠ 그냥 샤워하고 나와 이주문 그냥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면 진짜로 자장가 아... 매년 마다 이과정 거치는 나로는 너무 힘들다 내겐 너무 힘든... 과정의 원인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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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소라 | 11.04.03 조회:317
    감나무 류소라 (1)
    감나무 노랗고 빨간 나뭇잎들이 하나 하나 떨어지고 감나무 위엔 빠알간 감 하나만 대롱대롱 달려있다. 감하나가 매달려있다가 나무밑을 지나가는 아빠차 위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감하나가 매달려있다가 나무밑을 걸어가는 친구머리위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계속 고민고민하는데 새한마리가 퍼덕퍼덕이며 날아온다 날아오더니 감하나를 야금야금먹기시작한다 다행이다 우리아빠차위에 떨어질걱정은안해도되겠다 다행이다 친구 머리위에 떨어질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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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민수 | 11.03.28 조회:357
    옆집강아지 (2)
    몇년전 나를보면 짖는 옆집강아지 백구 주위에 xx도싸고 나를물어서 병원에깠던나 지금은 정든 옆집강아지 이제는 귀여운 우리집같은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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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자영 | 11.03.28 조회:360
    길들인다는 것 (1)
    길들인다는것은 길들인다는 것은 겉으로가 아닌 마음으로 사귀는것. 길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터높고 예기 할수 있는 그런 마음의 친구 길들인다는 뜻은 나의 마음속 그 허전한 빈 자리를 채워줄 어쩌면 단 한명의 나의 소중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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