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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팝아트
작성자 *** 등록일 13.04.17 조회수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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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팝아트

Ⅰ.

한국의 팝아트는 1967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에 참가한 ‘무’동인과 ‘신전’동인의 일부 작가들, 곧 김영자, 심선희, 정강자, 정찬승 등의 작품에서 그 맹아(萌芽)가 싹텄다고 볼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들어서이다. 특히 김동유나 홍경택, 이동기와 같은 팝 계통의 유명작가들이 홍콩 크리스티를 비롯한 해외 옥션에서 작품이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미술계에 팝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70년대의 소위 ‘극사실 회화(Hyper-realism)’ 붐에 편승해 팝적 소재들이 잠시 나타난 적이 있었다.

가령, 고영훈은 코카콜라 병을 극사실 기법으로 캔버스에 묘사한 적이 있으며, 조상현은 ‘장미여관’이란 영화 포스터를 역시 극사실로 그렸고, 김명수(보중)는 ‘선데이서울’이란 대중잡지의 표지를 크게 확대하여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시도들은 그 목적이 팝이 지닌 도상적 상징성이나 대중성의 표출보다는 극사실 회화의 개진에 필요한 소재적 차원에 머물렀기 때문에 본격적인 팝과는 거리가 있었다.

또한 한만영은 70년대 후반에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앵그르의 명화 중 일부를 차용하여 화면을 구성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시 유행했던 극사실의 범주에 더 가까웠다. 그 밖에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 작품으로는 잡지를 찢어 창틀 속에 집적한 여운의 <창>(1973)을 비롯하여 투명 아크릴 박스 안에 서양 여자의 누드 사진을 찢어 넣은 김정명의 <창(娼>(1975), 텔레비전의 화면 이미지를 캔버스에 전사한 뒤 말풍선을 그려 넣는 기법을 구사한 김용철의 개념적인 작업, 방독면을 쓴 남자의 얼굴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송번수의 <공습경보>(1974)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송번수의 작품은 비록 앤디워홀처럼 유명인사의 얼굴을 차용하지는 않았지만 기법이나 색채 면에서 가장 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이유는 똑같은 네거티브 사진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을 써 같은 크기의 마름모꼴 캔버스에 연속적으로 전사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은 검정 바탕에 녹색, 청색, 적색 등, 색을 달리하여 시리즈로 제작한 것으로 앤디 워홀 류의 팝아트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1980년대는 한국 현대미술사상 미증유의 이념적 혼란기이자 일대 전환기였다. 흔히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묘사되는 80년대 전반기는 다양한 이념적 목표와 활동 목적을 지닌 많은 그룹들2)이 청년작가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는 1960년대 초반 이후 지속된 군사정부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모순과 갈등이 낳은 산물이었다. 이 시기는 특히 70년대를 통해 대학에서 모더니즘 교육을 받은 젊은 작가들의 이념적 전향이 두드러졌다.

“과거 20여 년간의 핵심적 구조가 헤게모니의 추구로 인하여 상대적 파워의 구축을 초래하였고, 급기야 구심세력의 분규를 노골화하기에 이르렀다”고 묘사한 한 선언문3)의 내용은 이 무렵의 혼란스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적 구조’란 다름 아닌 70년대 당시 모더니즘 계열의 특정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것은 훗날 화단의 헤게모니 장악을 둘러싼 일종의 파워게임으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국의 팝아트와 관련해서 볼 때, 민중미술의 단초가 된 초창기 <현실과 발언> 그룹의 멤버 중 민정기, 주재환, 오윤의 일부 작품들이 주목된다. 미술은 가능한 한 대중이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전제하에 ‘최대한의 소통’을 주장한 이 그룹은 대체로 구상적 화풍을 견지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민정기는 소위 ‘이발소 그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풍으로 현실을 풍자하였다. 특유의 키치(kitsch) 풍으로 그린 그의 작품들은 의도적인 조야함을 통해 한편으로는 모더니즘 미술의 고급 취향을 공격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적 접근을 꾀하는 이중적 전략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 중 <풍요의 거리>(91x73cm, 1981)에는 팝의 고전이 된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대체 오늘의 가정을 그처럼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do Different, so Appealing?)>에 나오는 근육질의 남자를 패러디한 모습이 보여 이채롭다. 주재환의 <몬드리앙 호텔>(100x130cm, 1980)은 몬드리안의 격자형 도상을 차용하여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다. 그는 몬드리앙의 작품에 대한 패러디를 통해 당대의 사회현실을 풍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몬드리앙의 그림에 나오는 격자들 속에 호텔에서 벌어질 법한 일상적 풍경을 단순한 필치로 묘사한 이 작품의 제작 의도가 과연 대중에게 얼마나 전달됐느냐 하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패러디를 비롯하여 콜라주, 인용과 같은 모더니즘 특유의 기법을 빌어 대중과의 소통을 기하는 전략은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신학철, 박불똥, 김용태, 이종구 등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일반적 모습이지만, 이른바 ‘저항적 팝’4)의 관점에서 볼 때는 꽤 설득력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박불똥은 잡지나 화보에서 오려낸 코카콜라 병, 성조기, 햄버거 등등 대표적인 팝적 이미지의 콜라주를 통해 80년대 당시의 한국 사회가 처헌 정치적 현실을 풍자해 주목을 받았다. 이는 같은 코카콜라 병이라 하더라도 신학철의 경우에는 대표작인 <한국현대사> 시리즈의 서사(narrative)를 이루는 하나의 소재로 차용되고 있는 것에 반해, 박불똥의 경우는 그 자체 중심적인 모티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저항적 팝’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Ⅱ.

이처럼 한국 팝(Korean pop/K-pop)5)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던 80년대는 70년대에 비해 팝이 생성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훨씬 무르익은 상태였다. 그것은 바캉스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지닌 중상류 계층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퍼져 있었던 60년대에 비하면 현격히 나아진 환경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 팝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60년대의 팝은 무늬만의 팝, 즉 ‘팝적 징후’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동서를 막론하고 팝은 대중적 소비가 존재하는 대중소비사회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70년대의 경제적 여건은 60년대의 그것에 비해 훨씬 호전되고 있었다. 나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영훈이 이 그림을 그릴 무렵에 코카콜라는 대중이 손쉽게 사서 마실 수 있는 음료였다. 아직 현재와 같은 형태의 대규모 마트가 출현하지 않았던 이 시절에는 연쇄점이나 슈퍼가 나타나 재래식 구멍가게를 잠식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1950년대에 출시를 한 칠성사이다는 코카콜라의 출현으로 큰 위기를 맞았으나 ‘누가바’나 ‘부라보콘’과 같은 빙과류가 ‘새우깡’(1971년 첫 출시)과 같은 스낵류와 함께 대중 소비시대의 관문을 열고 있었다. 코카콜라는 1968년, 두산음료에 의해 제조,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청년작가연립전〉이 열렸던 이 무렵에 칠성사이다나 콜라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소풍을 가서나 겨우 사먹을 수 있을 만큼 귀한 식품이었다. 그랬던 것이 고영훈이 〈코카콜라〉를 그린 1974년 무렵에는 대중이 흔히 사먹을 수 있는 음료로 대중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70년대의 한국 사회는 60년대의 근검절약과 내핍이 낳은 경제적 풍요의 과실을 따는 시기였다. 특히 중동 특수로 인한 오일달러의 국내 유입은 ‘저축이 미덕’이던 시대에서 ‘소비가 미덕’인 시대로의 이행을 서서히 촉진시켰다. 월남전 참전과 그로 인한 국내기업의 해외건설 참여가 가져온 굵직한 경제 프로젝트들의 성공은 60년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촉발된 경제성장과 연계되면서 많은 재화를 창출했다.

1980년대는 사회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명암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한편에서는 경제적 풍요가 가시화되고 있었던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군부정권이 자행한 정치적 탄압에 의해 국민들의 인권이 훼손되고 있었다. 양귀자의 소설 <천마총 가는 길>은 가든식 불고기집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현실과 정치적 억압, 다시 말해서 ‘풍요와 인권’이라는 두 개의 극명한 명암이 사회전반에 교차되던 시절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7)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과 발언> 그룹과 같은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80년대 초반의 극명한 이념 대립은 한국 사회에 내장된 사회적 모순이 낳은 결과였다. 이른바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대립은 그런 모순과 갈등을 지닌 한국사회가 배태한 일란성 쌍생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Ⅲ.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서구에서 발원한 이 광범위한 문화현상이 한국에 수용되면서 한국의 지식사회는 비로소 다원화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좌우의 이념대립에서 촉발된 이분법적 논리, 즉 흑백논리가 이전까지의 한국 사회를 점유하고 있었다면,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으로 대변되는 외부적 요인과 1987년의 ‘6. 29 선언’이 야기한 민주화라는 내부적 요인이 합쳐지면서 다원주의적 관점들이 나타나게 된다. 팝아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이 시기의 특징은 대중소비사회로의 진입이란 말로 압축된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자 드디어 한국 사회는 대중 소비사회로 진입을 하게 된다. 백화점에는 질 좋은 상품이 넘쳐났고, 쇼 윈도우를 장식하는 디스플레이 기술도 선진국 수준을 능가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브생로랑, 루이뷔통, 베르사체, 샤넬과 같은 외제 상표는 이제 부의 상징이자 사회적 신분을 재는 척도가 되었다.”

이러한 물질적 토대의 변화는 한국사회에 팝이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때를 맞춰 등장한 것이 바로 신세대다. 한국 사회에서 신세대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9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대중가요, 패션, 광고, 인테리어, 컴퓨터 산업, 첨단과학, 정치, 예술계 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어떤 실체가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면서 그 주역으로 신세대가 거론되기에 이른 것”9)이다. 나는 이 문제를 다룬 한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세칭 ‘신세대’,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X세대’ 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부상은 더 이상 분석의 고삐를 늦출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급신장되어 가는 이들의 막강한 파워는 각종 제품 생산의 내용과 질을 결정하는가 하면, TV 및 신문, 잡지 광고의 흐름을 선도하고 때에 따라서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10)

신세대 미술의 등장을 알리는 첫 신호탄은 1987년 <뮤지엄> 그룹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모더니즘 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미감이 출현했다는 관측이 이루어지면서11) 이에 대한 분석이 다각도로 제기되기에 이른 것이다. <뮤지엄> 그룹을 필두로 황금사과, Sub Club 12), Coffee Coke, OFF & ON, New Kids in Seoul, Bio-installation, 헌화가, K의 방, 청색구조 등등 신세대 그룹이 잇달아 창립을 보는 가운데 이들 동인들 중에서 현재 한국팝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다수 배출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컨대 <뮤지엄> 그룹의 최정화와 이불을 비롯하여 이동기와 김준(New Kids in Seoul) 등이 그들이다. 1990년 소나무갤러리에서 [선데이서울]전을 기획한 뮤지엄 그룹은 팝적 내음을 짙게 풍기는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최정화는 과일, 생선, 채소 등을 실물처럼 만든 음식점 쇼윈도우 진열용 실리콘 제품을 출품하는가 하면, [이런 미술전](금호미술관 기획)에서는 빨간색 플라스틱 소쿠리를 수십 개 쌓아놓은 키치적 경향의 작품을 선보여 그 이후 키치팝의 대대적인 등장을 예고하였다. 그는 그 후에도 교통 감시용 경찰 마네킹을 전시장에 세워놓는 등 한국 사회 특유의 산물인 키치적 오브제를 통해 한국 사회를 비트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불은 자신의 누드를 찍은 사진을 확대하여 식탁에 부착하고 그 위에 빨간색의 푸딩을 떨어트려 관객이 핥아먹도록 유도한 뒤 그 결과물을 전시하였는데, 관객참여에 의해 완성된 이 작업은 푸딩이 의미하듯이 팝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간주된다.

작업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팝적 경향을 고수하고 있는 작가로는 이동기와 김준을 들 수 있다. 유명한 아동만화의 주인공인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하여 ‘아토마우스’라고 명명한 이동기의 독특한 캐릭터는 최근에는 추상과의 결합을 비롯하여 영상이나 아트 카 등 다방면으로 탐색을 거듭하여 팝 작가로서 확고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김준은 작업 초기에 인조가죽에 문신을 새겨 넣는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점차 컴퓨터 합성기법을 이용한 신체의 구현에 매료되었다. 3D의 가상현실에서 렌더링으로 제작된 인체들은 프린트 사진으로 제시되는데, 외국의 고급 브랜드가 새겨진 인조의 살을 통해 다국적 기업과 자본주의가 낳은 물신적 상황을 비판적 시선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펼쳐가고 있다.

Ⅳ.

이 글의 서두에서 나는 1967년에 출현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한국의 팝아트가 만개하게 된 시기는 최근이라고 서술하였는데, 여기서 최근이란 2천 년대 이후 약 10년간에 걸친 기간을 뭉뚱그려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 십년에 해당하는 기간은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대중소비사회로 진입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다 폭넓게 설정하자면 9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 사회 경제적 변동 요인을 고려할 때 한국이 고도 소비사회로 진입한 것은 멀리 잡아야 90년대 후반을 넘지 않는다. 그것은 예컨대 ‘테이크 아웃’ 음식문화를 선도한 스타벅스의 국내 진입(1999년)과 복합 영화 상영몰인 CJ CJV의 개장(1998년)이 지닌 상징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것은 또한 문화에 대한 대중의 태도나 미적 취미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가령 영화의 경우 복합 영화 상영몰의 등장은 관객의 다양한 취미가 반영된 것을 의미하는데(물론 이것은 한편으로 영화산업이 영세자본에서 거대 기업자본으로 옮겨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물론 테이크 아웃과 같은 음식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도시적 감수성에 호소하고 도시적 감수성에 의해 생성되는 팝은 근본적으로 도시의 예술이다. 물론 그것은 대중음악의 경우처럼 공간의 구별 없이 무차별적으로 침투하기도 하지만, 미술의 경우는 대개 도시를 중심으로 생산, 소비, 유통되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각종 광고를 비롯하여 화랑, 미술관과 같은 전시 공간, 쇼핑 몰과 같은 상업 공간, 스타벅스와 같은 휴게 공간, 영화나 음악홀과 같은 문화 공간에 자생하며 현란한 이미지를 증식시킨다. 그것은 전적으로 도시 속의 대중적 취미를 만족시키는 대중적 형태의 예술이다. 그것은 익명적이고 상징적이며, 무엇보다 균질적인 특징을 갖는다.

“도시는 그 그늘에 가려진 익명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빌딩의 숲은 수많은 사람들을 쉼 없이 빨아들이고 동시에 뱉어낸다. 거기에 ‘다름(異化)’이 있고 ‘같음(同化)’이 있다. ‘다름’이란 뒤섞이되 엄연한 차이가 존재함을 말하는 것이며, ‘같음’은 차이를 지닌 각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룰 때 나타나는 몰개성을 의미한다.

도시가 지닌 이 두 얼굴의 속성은, 서울에 빗대어 말하자면 강남과 강북만큼이나 확연하지만, 그것이 지닌 특유의 익명성에 의해 ‘같음’ 혹은 ‘다름’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성냥갑을 닮은 아파트, 기성복, 비슷한 화장술과 유행, 슈퍼마켓, 스타벅스, 현란한 쇼핑 몰, 붉은 악마 등등이 ‘같음’의 표지라고 한다면, 서로 다른 입맛과 취향, 색다른 주거 형태, 취미의 다변화 등등은 ‘다름’의 표지다. 도시는 대중에게 균질한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취미를 발산할 수 있는 장소를 부여한다. 도시가 그 맥 빠진 듯한 허장성세에도 불구하고 한없는 매력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처럼 다양한 메뉴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도시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15)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2천 년 이후 한국의 팝아트가 주로 20-30대의 신세대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소재와 주제 면에서 도시적 성격이 강한 것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도시는, 특히 그것이 인구 1천만 명을 상회하는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megaropolis)일 경우, 뉴욕, 동경, 북경, 상파울루, 파리, 런던,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삶의 양상과 패턴을 보여준다. 그것은 규격화된 아파트, 버스나 지하철, 택시와 같은 대중운송수단, 카페와 같은 휴식 공간, 백화점이나 쇼핑몰과 소비 공간의 산물이다.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itter)와 같은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의 기술문명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팝아트가 보여주는 삶의 균질성과 몰개성은 앞으로 더욱 확산돼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는 이른바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다. 이는 맥도널드 햄버거나 피자헛, 스타벅스와 같이 전세계적인 체인망을 갖춘 프랜차이즈 산업이 전 세계의 도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볼 때 팝아트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의 문제를 떠올리게 해 준다. 그런 관점에서 김준, 김기라, 이길우, 유영운, 윤종석, 강홍구, 조습, 김두섭, 위영일, 고승욱 등 ‘저항적 팝’의 계열에 속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코카콜라, 루이뷔통, 20세기 폭스, 미키마우스, 맥도널드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의 아이콘을 화면에 등장시켜 대중 소비사회를 풍자하거나(김준, 위영일, 이길우, 김기라, 윤종석 등), 사진이나 행위를 통해 한국의 정치적 현실이나 왜곡된 사회적 현상을 비틀거나 비판하는 작업(강홍구, 조습, 김두섭, 고승욱, 이용백 등)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팝적 성향을 지닌 대다수의 작가들은 ‘순응적 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초반에 이르는 신세대 작가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서 과거와는 다른 화단의 새로운 기류를 보여준다. 이들은 “팝아트는 대중적이고, 일시적이며, 재치가 있고, 전략적이며, 섹시하고, 젊다.”는 영국의 팝 작가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말처럼, 본격 대중 소비사회에 진입한 한국의 사회 현실에 주목하면서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화면에 발산하고 있다.

Ⅴ.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후반에 이르는 약 10년간의 기간은 한국 팝이 정착을 하는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맞물려 다원주의적 징후를 강하게 드러낸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팝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는 기간, 즉 모더니즘 대 민중미술이라는 경직된 이분법적 구도가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사회, 경제, 정치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더욱 번성하기에 이른다. 최근에는 70년대 중반 이후 태생인 20-30대 작가들이 한국 팝을 주도하고 있는데, 그 이전의 세대까지 범위를 넓혀 미술계에 나타난 현상을 바탕으로 이를 범주화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꿈/현실-자의식에 기반을 둔 몽환의 세계와 독자적인 캐릭터의 창출이 범주에 속하는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의식의 분출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이를 위해 독자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 대한 우의를 위해 동물을 등장시키거나(한상윤, 박성수, 노준, 아트놈, 이아영 등), 몽환적인 미시 세계의 설정(박형진), 해학적인 캐릭터를 통한 현실의 풍자(김경민),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강영민), 스타에의 동경과 열망(낸시랭), 꿈과 상상의 실현(파야), 블랙 코미디 같은 일상의 해학(임태규), 일상적 소재를 통한 풍자의 세계(최석운), 화투 이미지를 통한 놀이정신의 발현(조영남), 12동물을 등장시킨 일상의 꿈(안윤모) 등이 범주에 속한다. 박종호는 돼지를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하는 작업을 통해 나르시즘의 세계를 보여준다.

2. 일상/기표-일상적 사물에 대한 관심과 기표에 대한 관심

이 범주의 작가들은 자동차, 사과, 구두, 레코드판, 지구본 등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상적 사물이나 사태를 소재로 삼아 팝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과를 확대하여 소외효과를 드러내거나(김인태), 화려한 여성용 구두를 통해 소비에 대한 욕망을 풍자하는(박영숙) 작업이 이 부류에 속한다. 또한 추억에 내장된 사물과 시간에 대한 추적(최영돈), 기표에 대한 물질적 욕망의 투사(장재록)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여기에 속한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일상적 사물에 대한 관심을 통해 기표의 허상을 풍자하거나(박영숙의 ‘구두’와 장재록의 ‘외제 고급 승용차’), 일상적 삶의 평범한 모습에 대한 즉물적 접근(양은주), 마늘과 하이힐의 환치를 통한 상상력의 증폭(이재민) 등에서 나타나듯이 삶의 일상적 양태이다. 이지현은 생활의 소품들을 무질서하게 화면에 배치하거나 변형 캔버스를 통해 일탈된 사물의 양태에 주목한다. 윤정미는 청색(남)과 핑크색(여) 등 아이들이 선호하는 색깔을 지닌 일상적 사물들을 모아 스펙타클한 장면을 연출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3. 전통/현대화-민화의 재해석과 전통 산수의 현대화

팝적인 소재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 중에서 이 범주에 속하는 작가들이 수적으로는 가장 많다. 이 작가들의 전공이 대부분 한국화라는 점에서 봤을 때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작가들은 전통의 극복과 함께 한국화를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한국 팝의 지평에서 볼 때 민화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특히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볼 때 누군가는 계승하여 새로운 창조로 이어가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과도 연관돼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 20대에서 50대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는 작가들의 층은 전통의 계승과 창조라는 과제에 대한 작가들의 열정이 뜨겁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팝은 어떻게 보면 이미지 자체를 대중이 중심이 되는 사회적 맥락 속에 전치시키는 일과 관련된다. 이 일은 전통을 현실의 맥락 속으로 끌어들여 사유화(신선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서구 팝의 아이콘을 비트는 일(이길우)이기도 하며, 전통의 형식을 현실에 맞게 사적인 문맥에서 상징화하는 일(홍지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와 구한말 민초들이 즐겼던 ‘생활의 미술(민화)’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재창조하는 문제는 자연히 현대의 생활 감정을 전통과 연계된 형식 속에서 녹여내고 담아내는 작업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민화의 전통적 형식을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김지혜, 김근중)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며, 전통 산수화를 설치작업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어 제시하는 작업(임택)도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또한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되 전통의 문제에서 떠나 현대의 소외와 단절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하용주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민화의 재해석과 함께 전통 산수화를 어떻게 현대화하느냐 하는 문제를 화두로 삼아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그 중에는 이이남처럼 아예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여 전통 산수를 번안, 현대적인 버전으로 보여주는 작가도 있다. 이는 전통은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해석될 때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업이다. 한편, 개자원화전과 같은 동양화의 고전을 오늘의 맥락에서 새롭게 번역하는 일(임동승)도 시선을 끌고 있으며, 민화를 현대적 시각에서 해석하여 계승하는 일(김용철)도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4. 인용/번안-명화의 인용과 대중적 이미지의 번안

팝에서 고전 명화 내지는 유명인사의 대중적 이미지를 새롭게 번안하는 문제는 이제 하나의 전략이 되고 있다. 이는 작가 개인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면서 동시에 번안을 통해 특정한 이미지 자체를 ‘사유화(私有化)’하는 일과 관련된다. 여기서 창조의 개념이 문제시될 수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이 인용의 문제는 숱한 논의를 통해 정당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이제 문제는 인용 그 자체가 아니라 인용을 통한 의미의 ‘재맥락화’에 두어진다. 즉, 인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은 작품이 원전이 위치했던 맥락과 어떤 지점에서 다른가 하는 문제가 도출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사진 속 오드리 헵번의 모습을 삼차원의 슬림한 조각언어로 재창조한 조정화의 작업이 눈길을 끌며, 케네디의 흑백사진을 섬세한 붓질로 이루어진 원색으로 분해하여 독자적으로 해석한 장영진의 작업이 돋보인다. 김썽정은 화려한 색상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찍는 기법을 통해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또한 작은 이승만의 사진이 모여 큰 이승만의 초상을 만들어내는 동어반복적 기법(김동유)과 쌀이라는 실제의 오브제가 모여 모택동의 회화적 이미지(허상)를 만들어 내는 기법(이동재)도 원전을 새롭게 해석하여 재맥락화하는 방법일 수 있고, 이동기처럼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파생된 팝적 아이콘(아톰+미키마우스=아토마우스)을 결합하여 제3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재맥락화의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각기 다른 4가지 색조로 번안한 작품(이화백)에서 여자의 초상은 참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작품은 원전 팝에 대해 일종의 시니컬한 조크가 된다.

안수연은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흩으러트려 독자적인 틀 안에서 재조립하고 있으며, 위영일은 배트맨의 이미지를 도입하고 <고뇌하는 짬뽕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대중적 우상화를 희화화한다. 장유호 역시 배트맨의 이미지를 화면에 도입하여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권력층을 풍자한다. 오지영은 역시 엘리스 프레스리 등의 초상을 색지로 엮는 작업을 통해 원전을 번안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송광연은 직접 그린 앤디워홀의 초상화에 색실로 꽃이나 나비의 모양을 수놓는 작업을 통해 원전을 독자적 해석하고 있다. 홍경택은 점이나 다이아몬드 형태의 점으로 이루어진 기학학적 패턴 위에 스타의 이미지를 삽입하는 작업을 통해 대중음악을 시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인완은 사이보그를 연상시키는 남여 캐릭터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결합하는 등 고전 명화를 인용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Ⅵ.

팝은 보는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그 외연을 넓힐 수 있는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이는 ‘대중가요’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이 좋아하고 대하기에 쉬우면 우선 ‘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의 경우에 팝은 미술 고유의 형식과 매체 특유의 낯설음으로 인하여 음악의 경우처럼 선뜻 다가가기에 쉽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대중의 눈에 익숙한 도상을 사용할 경우 우선 ‘팝적’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대중적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은 작품의 경우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팝의 개념적 적용에 관해 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즉 하나의 작품을 놓고 그것을 제작한 작가와 이를 해석하는 비평가의 견해가 엇갈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볼 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팝의 외연은 넓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이제 팝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과거 60-70년대와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당위를 낳는다. 이제 우리는 컴퓨터상의 각종 블로그와 카페를 비롯하여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확산, 그리고 아이폰이나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폰의 대중화가 거기에 따른 어플리케이션의 개발과 함께 예술이 점차 생활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주도하는 매체가 바로 인터넷인데, 팝은 이 가공할 기술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그 개념은 물론 범위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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