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은 알렉산드로스를 대왕(마그누스)이라 불렀다. 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스스로가 주인공인 신화 속에 살았고,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믿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이 왕자는 세계를 정복하려 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소아시아 원정 중에 고르디움이라는 도시에 군대를 결집시켰을 때의 일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도시의 제우스 신전에서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는데, 이 신전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유명한 농부의 수레 받들어 모셔지고 있었다. 그 수레의 채에 박힌 나무못에는 나나카마드 나무껍질이 복잡하게 매어져 있었고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세계의 왕이 된다'는 전설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매듭을 푸는 데 도전하기로 했다. 일설에 의하면 나무못을 빼고 풀었다고도 하고 칼로 잘랐다고도 전해지는데, 어쨌든 그는 기존의 원칙들을 깨고 매듭을 풀어 '세계를 손에 넣을 사람'으로 만들었다. 패기에 넘친다고 칭찬할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말할지는 평가하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의 그리스는 전란의 시대였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교묘한 외교 정책 때문이었다. 페르시아는 군사적으로는 그리스 침략에 실패했지만, 풍부한 국력을 이용해 그리스의 여러 세력들을 매수함으로써 서로 분열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테네의 변론가 이소크라테스는 페르시아와 싸우기 위해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세계를 통솔하는 역할을 아테네에 기대했지만 이 도시에는 이미 그럴 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차선책으로 북방변경의 전투적 신흥 국가 마케도니아 왕국에 기대를 걸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마케도니아 왕국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동해안 아르고스 출신의 페루디카스가 세운 나라인데, 페루디카스가 현재의 그리스와 알바니아의 국경 근처 일리리아 지방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마케도니아인은 파란 눈에 금발, 하얀 피부를 가졌고, 그리스인과 혈연 관계는 있지만 독자적 언어를 사용하며 변경(邊境)을 생활권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그리스인으로부터 오랫동안 야만족이라는 뜻의 '발바로스'로 불렸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의 상류계급은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이려 애썼고 왕국은 점차 그리스 세계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기원전 454년,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페루디카스 2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가하여 마케도니아가 미개국이라는 오명을 씻는 데 성공했다. 그후에 마케도니아는 왕위 쟁탈전이 계속되어 내정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으나 기원전 356년에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필리포스 2세에 의해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필리포스 2세는 청년 시절에 테베에서 3년 동안 인질로 있었는데, 그곳에서 유명한 장군 에파미논다스와 페로피다스가 이끄는 강력한 테베군(軍)을 보았을 터이고, 그런 까닭에 조카 아민타스 4세의 섭정을 할 때부터 군사력 증강에 힘썼던 것이다. 필리포스 2세는 아테네 해상동맹에 의한 동맹시(同盟市) 전쟁에 참여해 정복한 안휘폴리스의 판가이온 광산을 비롯하여 새로운 정복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자금력을 기초로 군정을 개혁하고 군대를 더욱 강화하고 영토 확장에 눈을 돌린다. 필리포스 2세의 아내 올림피아스는 마케도니아 왕국 서쪽에 위치한 에페이로스의 공주였다. 기원전 356년 10월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밤, 올림피아스는 훗날 대왕이 될 왕자 알렉산드로스를 낳았고, 필리포스 2세는 수도 페라에서 멀리 떨어진 전쟁터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이 후에도 많은 내용이 있지만 다 쓰기엔 너무 많아서 생략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