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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
작성자 우태환 등록일 16.08.07 조회수 431
1867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출생했다. 결혼 전 이름은 스쿼도프스카(Maria Skłodowska)이다. 당시 폴란드는 분할 지배하에 있었는데, 바르샤바는 러시아령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정 러시아의 압정()을 겪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김나지움의 수학 및 물리학 교사였다. 10세 때 어머니를 잃고 17세 무렵부터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독학하였다. 당시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결심,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였다. J. H. 푸앵카레, G. 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으며, 수학·물리학을 전공하였고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1895년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여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남편과 공동으로 연구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잇달아 발견된 시기였는데, 뢴트겐의 X선 발견, H. 베크렐의 우라늄 방사능 발견에 자극받아 퀴리 부부도 방사능 연구에 착수하였다. 먼저 베크렐의 추시부터 시작했는데 부부는 방사능의 세기를 측정하는 데에 전기적 방법(피에르가 발견한 압전기의 이용)을 사용했다. 그것은 방사선의 정량적 측정법으로서 베크렐의 사진법()보다 편리한 것이었다. 토륨도 우라늄과 마찬가지의 방사선을 방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방사능(radioactivity)'이라 명명하였다.또한 방사능이 원자 자체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러 가지 시료()에 대하여 측정하던 중 우연히 우라늄 광물 피치블렌드가 우라늄 자체보다도 강한 방사능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그 속에 미지()의 강한 방사성 성분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 이것의 추출을 시도하였다. 보헤미아의 요아힘스탈에서 산출되는 피치블렌드에서 방사되는 방사능을 바탕으로 화학 분석을 하여(방사화학분석법의 시초), 1898년 7월 폴로늄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그녀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이어 그해 12월 라듐을 발견하였다.이 두 원소는 방사성 원소로서 발견된 최초의 것으로, 특히 라듐은 우라늄에 비하여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발견은 방사성 물질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03년 퀴리 부부는 베크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피에르는 소르본대학 이학부() 교수, 마리는 그 실험실 주임이 되었다. 1906년 남편 피에르 퀴리가 마차에 치어 사망한 뒤에도 단독으로 방사성 물질을 계속 연구하였다. 1907년 라듐 원자량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하고, 1910년에 금속 라듐을 분리하는 데도 성공하였다. 1906년 5월에는 남편의 후임으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소르본 대학 교수가 되었고, 1914년 소르본 대학에서는 그녀가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라듐연구소를 건립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해오자 라듐을 스위스로 옮겼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전쟁 중 장녀 이렌과 함께 부상자 치료를 위해 뢴트겐 투사기를 보급하는데 노력하였고 많은 부상자들이 목숨을 구하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파리 의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라듐연구소는 이후 파스퇴르 실험소와 퀴리 실험소가 되었는데, 그녀는 퀴리 실험소 소장으로서 프랑스의 과학 연구에 공헌하였다. 1911년 라듐과 폴로늄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후 연구소의 운영은 물리학자인 장녀 이렌에게 맡겼으며, 이렌은 마리 퀴리의 실험 조수로 있던 F. 졸리오 퀴리와 결혼한 뒤 1935년 남편과 함께 인공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는 그동안의 실험으로 몸이 쇠약해져 스위스에서 요양을 하였지만 1934년 7월 4일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61년 만인 1995년 4월 20일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역대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는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고한다. 전 이걸 읽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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