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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판단하게 하라
작성자 박성은 등록일 11.04.20 조회수 17

반장 중심의 중앙접중식 학급운영이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민주교육과 자치를 지향하려면 다양한 모둠 활동 중심의 학급운영이 요구된다. 그러나 모둠 활동 운영은 기능이나 방식 못지않게 담임의 '정치력' 이 요구되므로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학급의 생활지도를 전담할 '선도 모둠' 은 투명하고 빈틈없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매일 점검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급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학급헌장' 이 아이들 간에 잘 지켜지고, 절제와 재미를 곁들인 학급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선도 모둠은 동급생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시(?) 활동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이 더 쓰이는 게 사실이다.

생활지도는 종합적이고 유기체적인 학급운영 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선도 모둠이 있으면 선도 모둠의 활동을 짜임새 있게 확인하는 절차도 마련되어야 한다. 임원이나 모둠장이 아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눈을떠라' 모둠을 만들어서 담임 임원,선도,모둠의 활동을 점검하는 역할을 부여한 후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보고서를 작성하여 학급 공동체에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해서 실에 옮겨 보기를 권한다. 참 새콤달콤하고 맵짜다. 보통 각오가 없으면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선도 모둠장 준표가 복영이에게 만화책 한 권을 선물로 받고 복장 불량을 봐주었습니다."

"선민이가 전학 온지 3일 만에 동민이네에게 베란다에서 뺨을 맞았는데도, 이 경우 학급헌장에 의해 보고해야 할 의무를 지닌 반장과 선도 모둠은 선생님께 아무 말씀도 안 드렸습니다. 학급재판을 열 것을 요청합니다."

"담임선생님은 청소 시간에 도망을 간 두 애 중 지원이만 혼내고 기옥이는 봐주었습니다. 지금 반에서 차별대우라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기옥이가 따 당하면 선생님이 책임지실래요?"

때로 학급이 뒤집어지고 말싸움이 오가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눈을떠라' 모둠이 겨냥하는 대상에는 담임도 빠질 수가 없다. 임원들이 눈물을 훔쳐 가며 항변하듯이 담임 입장에서 억울한 것도 많다. 한번은 '눈을떠라' 모둠을 해체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막상 담임이 없애려고 하자, 평소에 그 모둠에 대해 감정이 곱지 않았던 아이들도 결사적으로 막아섰다. 가재는 게 편인 것이다. 그러므로 '눈을떠라' 모둠 같은 정치적인 모둠을 운영하려면 담임에게 날아올 날카로운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학급 안의 숱한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 것인가를 밤새 고민하는 담임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물은 흘러야 하고 말은 막히지 말아야 한다는 격언을 생각해 보자. 아이들이 입을 열고 활기차게 말을 하게 하려면 아이들에게 '생활' 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선도 모둠이나 '눈을떠라' 모둠은 그런 면에서 학급문화를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교과교실을 순회하는 프랑스나 미국의 아이들에게 학급은 주로 자치회의를 하고 학교행사를 심의하는 곳이다. 학급은 아이들의 것이고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곳이다.

왕따라는 말이 차고 넘치는 불신의 교실에서 올 한 해는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 담임 노릇' 이라 스스로 각오하고 '일' 을 벌여 보자. 아이들만 바라보자. 아무 일도 시도하지 않고 일 년을 낭비하기보다는 실패해도 좋다는 뜨거운 마음을 갖기를.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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