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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작성자 이지수 등록일 15.05.25 조회수 151
상록수 
 
옥천삼양초 사서교사 이지수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푸르른 5월의 신록을 닮았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풀숲 사이로 제멋대로 마구 자라난 것 같지만, 그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귀한 존재가 되어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멀리서 바라보아도 그대로 아름다운 신록처럼 말이다. 
 
 무엇인가에 속해 그 역할을 수행하노라면 일의 성패 혹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절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땐 만사를 제쳐두고 제3의 장소로 훌쩍 떠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나만의 해소법이다. 자연과 마주선 아이들도 어른들도 주변을 맴돌던 조급함에서 벗어나 초록을 머금은 나무를, 그 위를 노니는 새를 그리고 한번도 보지 못하고 다니던 드넓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다시금 생긴다. 한데서 자연과 더불어 잠을 잘 때는 아이들은 더 아이들답게, 어른에게도 어릴 때처럼 마음껏 유치하게 놀아도 될 권리도 생긴다. 
 여행을 마치고 가까운 친정, 당진으로 향하는 길에 메세지 한통을 확인한다. 기자님이다. 
 
 '칼럼은 내일 오전 주셔야 해요' 
 
  뜨끔해지는 무거운 마음으로 도착한 친정집 책꽂이에서 중학교 무렵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심훈의 '상록수(심훈, 신원문화사)' 책을 발견한다. 
 한껏 신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와 마음의 여유도 가득한 데다가, 제목까지 럭키다. '상록수'는 칼럼을 쓰는 동안 한번쯤은 소감을 정리해보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거니와, 나의 고향 당진은 심훈 선생이 '상록수'의 집필장소로 이용하셨던 "필경사"가 있는 문학의 도시다. 
 
 '필경사'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이름은 시에서 따온 것으로 '붓으로 밭을 일구다'라는 뜻이다. 실제 필경사에 가보면 비단 '상록수' 집필 장소여서만이 아니라, 소설 속 배경인 청석골이 이곳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채영신과 박동혁이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붓으로 밭을 일구다, 정말 멋진 말이다. 이 말처럼 채영신과 박동혁은 농촌을 일깨우는데 모든 것을 희생한다. 농촌이 일깨워져야 그들에게 나아가 전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두 사람의 믿음은 21세기의 오늘까지도 늘 푸른 푸르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정말 배우고 싶은 순수한 열망 하나로 사람들도 빼곡이 들어찬 예배당 풍경은 글로 읽어내는 순간, 눈에 보는 듯 훤히 그려진다. 여러 사람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것은 땀냄새가 아니라, 배우고 싶다라는 열정에서 나오는 신성한 아우라다. '즐기면서 하는 사람은 당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 사용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서 나를 붙잡아두는 문장으로, 나아가 힘겨울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말로 내 마음 속에 하나의 기둥이 된 말이다. \
 아무리 좋은 여건이 주어져 있어도 결국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효율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의미로 비단 젊은 나이에 요절은 했을 지언정, 영신은 인생의 목적이 확고했으며 노력했고, 열정을 내뿜었다. 그런 의미로 성공한 삶은 아닐지! 
 영신에게는 사랑마저 사치일 정도다. 영신이 박동혁과 결혼을 하여 아이 뒷바라지, 가사일, 어른과 남편 봉양을 하며 남은 일생을 사는 것보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위하여 박동혁에게 결혼을 단념하라고 이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란 독백은 의외로 내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우선 순위를 정하라면, 내 행복, 내 가족, 내 일, 내 돈, 내 명예... 등 뒤에 그 무엇이 오든 '나'가 앞정서 따라오는 것들을 정렬시키기 마련인데, 이 채영신이라는 여성은 농촌 교육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세우는 것 외에는 다른 욕망은 내어보질 않는다. 
 
 푸른 5월. 상록수 책을 덮으며 가슴 한쪽이 뭉클해진다.  
 당진이 철강의 도시로 급부상되고, 서해대교 등의 웅장한 건축물 등이 있는 신생도시가 되었으나, 내가 기억하는 당진은 여전히 심훈 선생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문학과 기지시 줄다리기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도시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나 역시 영신의 정신을 어느 정도 이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열정을 다해 보다 넓은 시선으로 세상에 이왕이면 1%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진다. 남은 내 삶에 대한 소명, 다시금 진지해지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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