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반)버들 낭자 장화 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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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권수인 | 등록일 | 16.08.12 | 조회수 | 233 |
버들 낭자 장화 왕후 를 읽고 중거리:장화왕후는 나주의 호족 오다련군의 딸로 신분이 낮았으나 아름답고 지혜호워 나주에 출전했던 왕건이 아재로 맞아들였다. 그러다 918년에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태조로 즉위하자 제2왕후가 되었는데,드 사람의 첫 만남은 이렇게 전해진다. 하루는 왕건이 군사들과 행군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다. 그때 마침 금성산 남쪽에 오색구름이 서렸기에 가 보았더니 우물가에서 한 여인이 빨레를 하고 있었다. 왕건이 물을 청하자 여인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 벼들잎을 띄워 건네주었다. 왕건이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묻자 여인은 "장군께서 급히 마시다가 체하실까 염려되어 그리하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건은 여인의 지혜와 뛰어난 미모에 반해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이 여인이 바로 장화왕후이다. 장화왕후는 왕건을 만나기 얼마전에 용 한마리가 구름을 타고 날아와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912년에 잔화왕후는 왕건과의 사이에거 아들 왕무를 낳았다. <고려사>에서는 왕무를 두고 늘 잠자리를 물로 적셔 두었으며 큰 병에 물을 담아 끊임없이 팔을 씻는것을 보니 용의 아들이라 할 만하다 라고 한 기록이 있었다. 왕무는 왕건의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한미한 가문 탓에 환대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왕건은 지혜와 용기가 뛰어난 왕무를 아껴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었는데,왕위계승이 순단치 않을것을 짐작해 장화왕후에게 자황포가 담긴 옷상자를 내려 주었다. 자황포는 신분이 놓은 남자가 입는 황적색의 겉옷으로 흔히 임금을 뜻했다. 지금은 유력한 호족들의 반대가 심해 태자로 삼지 못하지만 왕무를 태자의 재목으로 인정한다는 속마음을 표현한 행동이었다. 얼마뒤 장화왕후는 박술희 장군에게 자황포를 내보였고 박술희는 그 뜻을 헤아려 왕무의 태자 책봉을 정하였다. 박술희는 많은 군공을 세운 장군으로 지지 세력이 약한 왕무에게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주었다. 921년에 태자 자리에 오른 왕무는 왕건을 도와936년에 후백제를치는 공을 세웠고 943년에는 왕건의 뒤를 이어 고려 제2대 임금인 혜종으로 즉위 하였다. 하지만 신하들은 여전히 혜종을 달가워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복동생 왕요 와 왕소가 왕위를 노렸다. 신하 왕규가 이 사실을 알렸으나 혜종은 끝내 동생들을 벌하지 않았다. 왕규는 혜종을 제거한 뒤에 왕건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왕으로 세우려고 모의 하였다. 혜종은 끊임없는 왕위 다툼속에 몸져 누웠고 즉위한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한편 혜종이 죽고 정종이 즉위하자 왕구가 반란을 일으켰는데왕건의 사촌동생인 왕식렴 장군이 나서서 진압 하였다. 내 생각과 느낌:장화왕후와 왕건은 특이한 만남을 가진것 같다. 그리고 장화왕후가 왕건이 물을 마실대 버들잎을 띄워 주었을때 정말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생각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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