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故김 군자 할머니(김해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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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추소희 | 등록일 | 18.06.27 | 조회수 | 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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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사> 위안부 故김 군자 할머니 10507 김해람 故김 군자 할머니를 알고 계십니까? 위안부는 중일전쟁 및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에 일본군과 일본정부가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목적으로 동원하여 일본군의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을 말한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이다. 2017년에 개봉된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모티브 또한 김 할머니이다. 김 할머니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1942년 17살에 심부름을 나갔다가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끌려갔다. 할머니는 중국 훈춘에 도착해서도 돈 벌어오라고 보낸 줄 알았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그곳에서 일본 군인들의 성 노리개가 되어야했다. 할머니는 위안부 생활 3년 동안 7번의 자살시도, 탈출시도를 하던 중 일본 군인에게 저항하다 죽지 않을 만큼 맞아 왼쪽 고막이 터졌다고 말씀하셨다. 해방 이후 두만강을 넘을 때 함께였던 친구 1명이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을 보며 힘들게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동거하며 잠시 행복했지만 남자 부모의 반대가 극심하여 남자는 자살을 택했고, 동거생활을 하다가 임신하여 겨우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도 안타깝게 5개월만에 숨지고 말았다. 2007년 김 할머니는 또 다른 ‘위안부’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그대로의 참 모습을 고백했다.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2015년 12월 말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이 ‘나눔의 집’을 방문해 김 할머니를 위로하는 모습이다. 김 할머니는 2000년 8월 아름다운재단 1호로 정부 생활지원금을 모은 5,000만원 이라는 큰돈을 보육시설 아이들의 장학 사업에 쓰이길 바라며 기부하였다. 또, 2006년 할머니는 5,000만원을 추가로 기부하였다. 아름다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까지 김 군자 할머니 기금의 누적 모금액은 약 11억원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이 기금을 통해 학비 지원을 받은 장학생이 약 250명이 넘는다. 이 기금을 통해 내가 만약 김 할머니였다면 이런 큰돈을 기부 할 수 있는지 생각해 할머니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김 할머니는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듣고 그에 대한 정당한 배상을 받아보는 것이라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2017년 23일 오전 8시 4분 향년 91세 나이로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다. 90세가 되던 당신의 생일날,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기구할까 했는데 남들에게 다 나눠주어 기쁘고 이제는 미련도 후회도 없어”라고 하셨다. 위안부에 대해 알아가자는 식으로 이 기사를 쓰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일본 정부에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느꼈다. 나도 할머니를 본받아 기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달 1,000원씩 기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빨리 사과를 받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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