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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작성자 북이초 등록일 08.07.22 조회수 96

내가 이책을 읽게된 이유는 지난8월24일 어머니와 함깨 수원에있는 화성에 갔었다. 수원화성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라는 왕이 노론과 싸울려고, 했었던게 사실이다.정조가 수원성을 쌓고 굉장히 많이 그곳을 왔다갔다 했다고한다.비록 탕평책을 실시했지만 중심적인 권력은 노론이 다 잡고있던 상태라사실 수원성을 지은 이유는 한양에서 수도를 옮길려고 했것이다.


정약용은 어렸을때 1762년에 지금의 경기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아버지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귀농이라는 이름을어릴적에 붙어주셨어다. 그리고 귀농은3살때 천자문을 아버지에게 배웠으며하늘 천,따지,검을현,누르황을 마당에서 까지 쓰면서 연습하면서 천자문을 다 왜웠고
어렸을때 부터 마음씨가 고와서 어느 날에는 아버지와 함께 강에 가서 낚시를 했는데작은 새끼 붕어가 올라오자 불쌍하다며 놓아줬던 일이 있었다.정약용은 정말 착한것같다.또한 한 10살정도에 이사를 가는데 숲에 있는 자기가 가지고 놀았던 돌멩이 풀따위를이루어 만지면서 나를 잊으면 안돼 !!하면서 어릴때 부터 정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연천현의로 이사를 온 귀농은 아버지께서 현감이였는데.. 하루는 군사들이험상궃게 생긴 남자를 데리고 오면서 소도둑을 했다며 현감(정약용의 아버지) 에게낱낱히 말했어요..하지만 그 남자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면서 변명을했다.나는 변명하는 사람들이 정말싫다.
그걸 본 귀농이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 사건을 주의깊게 들은후 아버지께 이렇게 말 했습니다. 하늘을 맹세코 소를 훔치지 않았다고 하니 안 훔친것 같아요 다시 조사를 해요 아버지.. 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정말로 그 남자는 소도둑이 아니라고 판정이 나왔고 다른 사람이 범인 이었습니다..이렇게 어린시절 부터 정이많고 현명한다.귀농은 청년시절에 정약용으로 이름을 바꾸고 15살에 혼인을 하고 22세에장원급제하였으며 맏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3살때에 전시의 문과에 학격한후후에 벼슬이 점점 높아지었으나 간신들의 모함으로 29세에 천주교를 믿는다고 귀양이보내져서 열흘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1살에는 홍문관 수찬벼슬을 하며사람들을 잘 돌보았으며. 32살에 암행어사가되어 나쁜 관리들을 혼내주고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는 현명한 사람이 되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를 이용해수원성이 완공 되었습니다. 하지만 40세에 천주교도들을 잡아들인신유박해에 휘말려 경상도 장기로 귀양을 갖고 47세에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책을 쓰는데 온갖 힘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10년후인 57세에귀양살이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계속 책을 쓰는데에 열중을 해서흠흠신서 30권 역학 서언 12권 민보의 3권 경세유표 40권 대학 회의,명자 요의 등과 같은 책을 펴내고 목민심서를 쓰면서 우리나라의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걸로 알고있습니다. 또한 그가 쓴 책은 30여가지나 되고 시도 2469편이나 썻다고 합니다.그리고 1836년 2월 22일 조선의 대학자 정약용은 고향 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정약용이 눈을 감을때 나도 눈물이나올것같았다. 조선시대는 정말 나쁜 탐관오리들이 반이상인것같다.조선시대위인들은 잘못도 없는데 자꾸 끌려가는위인들이많은것같다. 특히 이순신장군도 임진왜란때 잘못없는데 백이종군을2번이나 당했기때문이다.

내가만약에 조선시대 왕이었다면 벼슬아치,탐관오리등을 혼내주어 조선시대때 최고의 나라를 이끌것이다

나도 나중에 '정약용' 처럼 좋은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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