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와 통하다
“진수야, 쓰레기 좀 버려 줄래.” “엄마, 나 지금 피곤해, 나중에 할게.”
“안 돼, 이거 지금 당장 해야 돼.”
“휴…엄마는 왜 맨날 엄마 맘대로만 해야 되는데, 내가 엄마 노예야?”
“휴…너는 왜 엄마가 뭐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니?”
“엄마가 날 더 힘들게 하거든요!!”
어린 시절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로 귀엽게 나를 보며 웃음짓던 아이는 더 이상 없다. 긴 머리 사이로 가느다랗게 드러난 눈으로 힐긋 엄마를 쳐다보며 입을 다무는 아이, 말을 해도 듣지 않고 말대꾸만 하는 아이, 어쩌다 훔쳐본 일기장과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알 수 없는 말들과 거친 표현만 남겨 놓은 아이, 부모에게는 괴물이 따로 없다. 이 아이들에게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먼저 세상과 아이들이 많이 바뀐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의 신체적 성장은 더 빨라졌지만 정신적인 성숙을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졌다. 많은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경쟁과 성취 압력으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을 이기는 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예전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 체벌이나 권위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통제하려는 것은 이제 통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소통의 방식도 달라졌다.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대화보다는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메시지가 아이들의 대화에 더 자주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자녀 간의 진심 어린 대화는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경험이 된다. 둘의 대화는 아이를 기쁘게도 하고 상처도 주면서 아이의 몸과 머릿속의 기억으로 깊이 남는다. 지금 당장 그 말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남은 부모의 말은 자녀의 삶에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자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마음의 틀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누구나 다 알겠지만 소통의 첫 단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다.
내 아이가 날 이해해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둘 중 누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면 그건 분명히 부모이다. 부모가 강자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보다 더 유능하고 아이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며 그리고 잘 키워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왜 이런 말을 나한테 하는지, 내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아이는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무슨 행동을 할지 그리고 나는 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지를 자주 고민하고 생각한 다음 말해야 한다.
가령, 엄마의 야단치는 말에 “난 엄마가 싫어!”라고 말하는 14살 여자아이가 정말로 엄마를 증오하고 미워할까? 아마도 이런 아이의 말은 ‘엄마가 다그칠 때 난 미칠 것 같아, 딸한테 어떻게 그래?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다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10대 아이들의 느낌은 강하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한순간 엄마가 정말 밉지만 마음속 깊이 담긴 엄마에 대한 애정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런 딸에게 엄마는 “너 엄마한테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네가 널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고 사는데”라고 말하기보다는 “엄마도 널 너무 다그쳐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부족한 아이의 말에 부모가 단순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이해하고 있음을 분명히 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됐거나 이미 사춘기가 무르익은 자녀를 둔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 왔는지 점검하고, 감성에 휘말려 이성을 잃고 습관적으로 잔소리를 퍼붓기보다는 한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아이와의 소통을 위하여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윤경/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아이를 크게 키우는 말 VS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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