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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군 장영실'을 읽고 (6-5 주진호)
작성자 주진호 등록일 10.08.23 조회수 30

 나의 장래희망은 과학자이기 때문에 과학책 읽기를 좋아한다.  조선시대의 과학자인 장영실에 관한 책을 읽기로 했다.

장영실은 동래현의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영실은 평생 노비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영특한 머리와 손재주를 지녔던 장영실은 태종 임금 때 상의원 기술자로 뽑혀 궁궐에서 일하게 되었다. 노비 출신이란 꼬리표 때문에 업신여김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 몸을 낮추고 열심히 일했다. 그 덕분에 장영실의 실력응 궁궐 안에서도 손꼽힐 만큼 두드러졌다.

태종 다음에 왕위에 오른 세종은 누구보다도 장영실의 재주와 영특함을 아끼고 사랑했다. 세종은 나라를 잘 살게 만들려면 과학과 기술이 발전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조선은 중국의 역법을 사용하고 있어서 조선만의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일을 맡길 인재들을 뽑아 천문 관측 사업을 벌였다. 장영실을 노비의 신분에서 풀어주어 그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영실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천문 관측기구를 만들어갔다. 장영실은 혼천의, 간의, 닝성정시의 같은 천체 관측기구들을 만들었다.

장영실은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다. 그 때만 해도 자동 물시계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과 아라비아 두 나라뿐이었다. 따라서 조선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기준 시간을 두도 쓰는 나라가 되었다. 그 자격루는 1434년 7월부터 조선의 표준 시계로 쓰였다.

마침내 장영실은 그 공을 높이사 종3품 대호군의 벼슬에 올랐다. 그 후로도 장영실은 계속 자신의 꿈을 좇아 흔들림 없이 노력했고 그 덕분에 장영실은 조선의 으뜸 과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 뒤. 장영실은 자신이 만든 세종의 가마가 무너져서 궁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때는 중궁의 허락없이는 천문 관측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세종은 다시 장영실을 부르지 않았다. 아마도 장영실을 놓아 줌으로써 끝까지 지키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나도 장영실처럼 끝까지 노력하는 과학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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