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길 저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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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성은 | 등록일 | 10.11.01 | 조회수 | 82 |
세월도 이사를 하는가 보다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할 시간과 공간을 챙겨 기쁨과 슬픔, 떠나기 싫은 사랑마저도 챙겨 거대한 바퀴를 끌고 어디론가 세월도 이사를 하는가 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기억 속에는 아직도 솜틀집이며 그 옆 이발소며 이빨을 뽑아 지붕 위로 던지던 기와의 너울들 마당을 지나 아장아장 툇마루로 걸어오던 햇빛까지 눈에 선한데 정작 보이는 것은 다른 시간의 사람들뿐 저기 부엌이 있던 자리 지금은 빌라가 들어선 자리 그 이 층 베란다쯤 다락방이 있던 자리 엄마가 저녁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가슴에 초승달처럼 걸려 있다 몇 년 만에 아기를 업고 돌아온 고모와 고모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는 말없이 펌프질을 하던 할머니는 그 마당 그 식솔과 음성들 그대로 끌고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낯설어 더 그리운 골목길을 나오는데 문득 내 마음속에 허공 하나가 무너지고 있었다 허공의 담장 너머 저기 휘어진 골목 맨 끝 기억의 등불 속에 살아 오르는 것들 오, 그렇게 아프고 아름답게 반짝이며 살고 있는 것들.
권대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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