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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2.
작성자 유동은 등록일 10.08.13 조회수 27

나는 아직 세종실록을 읽는 중이다. 그래서 내용이 짧아도 구체적으로

쓰려한다. 세종이 즉위하고 열흘 남짓 지난 어느날. 태종대왕께서

말하시기를 "이번에 중국으로 갈 사은사는 내가 보위를 물려준 사실을

설명해야하니, 임무가 실로 막중하다. 사은사로는 무릇 친척을 보내는

것이 상례이니 심온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심온

대한 설명이다. 심온, 세종의 장인으로 심덕부의 다섯째 아들이다.

심덕부는 태조와 위화도 회군을 함께했고 개국 후엔 좌의정까지 지낸

인물, 아들들도 모두높은 벼슬에 이르렀으니 그의 집안을 실로 당대의

명문가라 하겠다. 심온은 그렇게 좋은 가문에 대군(세종)의 장인이라는

배경, 그리고 그 자신의 능력까지 인정받아 40대 초에 이미 이조판서의

지위에 올랐다. 태종대왕께서 또 명하기를 "심온은 주상의 장인이니

영의정에 앉혀라." 라고 하셨다. 이상하지 않은가? 외척에 대해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경계심을 보여온 태종이 아니었던가? 그의

중국행을 전송하는 잔치에는 도성 안의 꽤 유명한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렇게 심온은 임금의 장인이자 영의정의 신분으로 중국을 향해

떠났는데 강상인 사건이 종료된지 두어달이 지나서 태종은 느닷없이

강상인 사건을 다시 끄집어 냈다. 심온이 떠난지 한 달 가까이 흐른

때였다. 전보다 더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네 차례나

압슬형이 가해지고 나서 마침내 강상인은 취조자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하였다."나라의 명령은 한곳 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진술이 시작되었는데 줄이면

"박습과 의논하였고 이조참판이관도 동의. 동지총제 심정도 그랬다. 

그리고 영의정 심온 도 군사는 마땅히 한 곳 에서 명이나와야 한다고

하자 '옳다'라고 하였다."이다. 그래서 태종대왕은 수사를 중단하고

의주에 가서 기다렸다가 심온을 잡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그리고

대신들과 의논을 한 후 관련자 전원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곧바로 집행

해버린다. 기묘할 만큼 잽싼 일처리였다. 그때 태종대왕은"강상인은

거열(사지가 찢기는 참혹한 형벌.)형에 처하고 이관과 심정은 목을

베어라!"라고 하셨다. 그때 강상인은 이렇게 절규했다."나는 죄가

없는데 매를 견디지 못해 죽는다!"라고 말이다. 고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채 한 달 뒤 심온은 압록강을 건너 귀국했고, 즉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태종대왕께서는 왜 그렇게 외척에게

가혹 했을까? 예전에 안좋은 추억이 있어서일까? 그랬으면 이해는

간다. 그런데 심온은 너무 불쌍했다. 왕의 장인이자 영의정을 신분은

고려하지않다니... 뭐 그것도 벌을 내리는 입장에서는 당연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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