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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 웃고 있을 때 혼자 되고 나는 울지 사랑이 깊어 갈수록 외로움은 더욱 커져
작성자 박성은 등록일 11.07.11 조회수 47

처음부터 네가 외톨이는 아니었다.

뉴타운이 생긴 뒤 개교한 학교는 책상, 의자, 청소 도구함마저 새것이었다. 모든 게 새것이고 나도 새것인 양 앉아 있었다. 그곳 어느 의자에 너도 앉아 있었으리라. 어색함이 곳곳을 무겁게 누볐다. 처음은 늘 내 기를 죽게 만든다. 가뜩이나 같은 학교 졸업생이 한 명도 없어 불리한 조건으로 시작하는 게임과도 같은 입학 날이다. 나는 초록색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외톨이>란 노래를 속으로 내질렀다.

그런 분위기를 깨고 네가 입을 열었다. 담임으로 들어온, 얼굴색이 창백한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무슨 과목이세요? 라고. 생각해 보면 별 질문도 아닌데 2반 아이들은 너를 주목했다. 나 또한 호감 이상으로 끌렸다. 하얀 얼굴에 다른 아이들보다 큰 키, 가뭇가뭇 입 위에 번지는 수염까지. 초등학교 때와 달리 과목 담당 선생님이 있음을 알고서 질문하는 너, 너를 둘러싼 주위에 아우라가 느껴졌다.

 

"저는 회장 자리를 사퇴하겠습니다."

키가 큰 네가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말하자, 교실 전체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창백한 얼굴이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선생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내 심장이 두근거림이 빨라졌다. "뽑아 주신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학급 회장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회장직을 맡을 만큼 책임감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저는 조금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제 자유를, 아니 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인사를 꾸벅 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너, 너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 '자유' 라는 말이 내 입에서도 맴돌았다. 알사탕을 굴리듯 '자유' 란 말을 혀끝으로 굴려 보았다.

선생님은 "너 참 별난 놈이구나." 하고는 부회장에게 회장을, 아쉽게 떨어져 시름에 잠긴 내 앞의 긴 머리에게 부회장을 맡겼다

"재민이는 잠깐 나 좀 보자."

선생님을 따라 나가는 너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네가 나간 빈 자리에 회장, 부회장이 된 아이들이 초라하게만 보였다.

"개폼 잡고 있어. 찌질이 주제에."

뒷북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말 한마디 않다가 뒤에서 뭐라 구시렁거리는 녀석이었다. 아무도 뒷북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쟤 뉴타운에 살지도 않아. 알아?"

뒷북이 아무도 들은 척 하지 않자, 폭탄 발언이라도 하듯 터트렸다. 그러자 아이들이 "정말? 어디에 사는데?" 하며 관심을 보였다. 뒷북은 네가 저 북한산 쪽에서 버스 타고 오는 거 봤다고 지껄였다.

나는 샤프 꼭지를 눌렀다. 튀고 싶은 뒷북의 말이 이어졌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난 그런 애들한테는 채질적으로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켰다. 지금이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샤프심이 더디게 나와 잇달아 꼭지를 톡톡톡 눌렀다. 내가 그리는 만화는 일본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쓱쓱 그리다 보면 어느새 필기 공책에는 주인공과 꼭 닮은 얼굴들이 눈썹을 치뜨고, 주먹을 움져쥐고,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공책의 사방에 만화 주인공들이 넘쳐나면 공부할 때보다 더한 희열을 느꼈다.

"야, 시욱이 그림 진짜랑 똑같지! 이 눈빛, 정말 죽이지 않냐?"

너는 내 그림을 아이들한테 보여 주면서 마치 자기가 그린 것처럼 떠벌렸다. 약간의 과장을 즐기는 너의 말이 싫지 않았다. 내 그림을 치켜세우면서 너의 단짝임을 은근히 공포해 주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너 떄문에 별명이 샤프가 된 나. 너는 아침마다 친절하게도 8시 10분까지 모닝글로리 문방구 앞으로 나오라는 전화를 했고 화장실, 식당, 운동장 어디든 나를 데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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