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금지, 약인가 독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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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성은 | 등록일 | 11.06.27 | 조회수 | 35 |
교육부는 지침으로 체벌 허용 여부를 일선 학교에 일임했다. 학교에서 학칙으로 정해 자율적으로 시행한다고 하지만 회초리 규격과 사용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체벌은 허용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0년 말에 체벌을 일체 금지한다는 지침을 내린 교육부가 공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체벌을 허용한다고 했으니 정작 체벌을 당할 곳은 교육부다. "때리기만 해 봐요. 교육청에 고발할 테니까." "어? 체벌이잖아요. 선생님, 못하게 되어 있는 것 다 알아요. 그 막대기 치우세요."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교실을 달구면 교사들은 순간 어찌 처신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체벌 금지를 법령이나 부령도 아닌 '지시' 하나로 전국의 학교에 확산시켰던 교육부는 대안 마련을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떠민 채 뒷짐을 지고 있고, 학교장들은 '때리면 책임 못 진다' 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던 것이 엊그제였다. "그래 봤자 너희들만 손해다. 나는 법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하는 사람이다. 걸리기만 해 봐라." "지금부터 적발되는 사람은 점수를 깎는다. 조금 더 잘못하면 부모님 모셔 오기다." 체벌보다 더한 언어폭력이 교사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체벌이 줄어드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체벌 허용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무도회, 댄스파티에 참가할 수 없다." "체육 수업을 다시 받아야 한다." "기말시험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졸업식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 "사건을 인지한 주변의 학생은 교사, 상담원, 학교행정가들에게 그 사실을 의무적으로 알려야 한다." 미국 일리노이주 211학군의 고등학교 학칙 중 처벌 규정이다. 우리 현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생활주기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합리적이고 현실에 맞는 학교, 학급, 교과 시간의 학칙을 개발해야 할 때다. "학교에서 가장 큰 불만은 당연히 선생님들이 때리는 거죠. 우리, 국어 선생님에서부터 기술 선생님까지 모두 다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정말 할 이야기 많아요." "112신고 이후로 매가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신 언어폭력이 심해졌어요. '병신 같은 것이' '돌대가리 같은 놈' …… 차라리 맞는 것이 속 편하다 싶을 때가 있어요." "저는 나중에 교사가 되고 싶어요. 교사가 돼 가지고 애들을 갖고 놀고 싶어요. 괜히 열받으면 '너, 나와' 그래서 때릴 수도 있고, 마음대로 욕해 줄 수도 있고 좋잖아요." "공부 잘하고 예쁜 애들은 아무래도 덜 맞아요. 똑같이 떠들어도 공부 못하는 애는 '산만한 것' 이고, 공부 잘하는 애는 '성격이 밝은 것' 이지요." 체벌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입에 거품을 문다. 반면에 '교육' 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체벌은 실상 사랑의 매라기보다는 통제의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교사들도 있다. 1998년 2월에 <전교조> 에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교사들이 체벌을 하는 이유로 수업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꼽은 수치가 90%가 넘게 나왔다. "물론 아이들 말이 일리는 있어요. 그러나 정숙해야 할 수 업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은 언제나 정해져 있어요. 시간마다 맞는 것은 당연하지요." 체벌에 관한 한 교사와 아이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열악한 교실 환경, 과다한 학급당 학생 수, 국영수 중심의 과다한 학습량 등은 교사의 언어폭력과 과잉체벌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체벌 금지가 법제화된 영국등에서는 체벌 대신 한 해 1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교칙에 의해 등교 정지 처분을 받고, 일본과 미국에서는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대교사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체벌 문제는 어느 나라나 뜨거운 감자다. "그냥 몸으로 때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맞고 말 것을 교칙에 의해 처벌받고 잘리게 되면 그나마 갈 곳도 없잖아요." 막상 체벌 금지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아이들은 수동적인 학교생활에 젖은 아이들이다. 차라리 몸으로 떄우겠다는 발상에서 체벌 문제는 결국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위한 사치스런 액세사리로 전략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체벌은 약인가 독인가? 화두 같은 그 물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1989년에 유엔에서 제정되고 1991년에 한국이 가입한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54개 조항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린이와 청소년은 '사랑의 대상' 이자 '권리의 주체' 이다. 학생은 단순히 양육의 대상이며 피보호자라는 소극적인 존재 의미를 넘어 스스로 어떠한 과제를 선택하고 풀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적극적인 인식을 가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보호 선언' 이나 학생선도 규정 완화' '체벌 대체 방안' 등 사징적인 미봉책으로는 그 권리와 권리 과정을 보장받을 수 없다. 권리에 따른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를 서둘러 마련하고,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세미한 규정과 방편을 확립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교장 선출 보직제, 학생호이ㅢ 자치 권한 확대, 교사들의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 권한 확대, 지역 내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학칙 제정 등은 체벌 문제의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체벌을 허용하는 규정을 만들겠다는 교육부나 체벌은 절대 안 된다는 일부 학자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체벌 문제를 찬반 양쪽으로 몰고 가서 오히려 국민들의 감정만 자극한다. 교사와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명제가 아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들어 가며, 수업 시간이나 학급 자치회의, 모둠 활동을 통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풍토를 우리 사회가 만들어 주기를 소망할 뿐인 것이다. 체벌은 약도 독도 아니다. 때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전설(?)만이 전해져 내려올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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