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다가 판단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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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성은 | 등록일 | 11.06.08 | 조회수 | 14 |
"어떻게 학급을 관리하기에 애가 이 모양이 되도록 모르셨어요? 너무 하시는군요." 아침부터 걸려 온 현주 엄마의 전화에 정 선생은 기겁을 했다. 담임을 맡은 1학년 현주가 점심 시간에 매점 앞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2학년 선배 진영이로부터 인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담뱃불로 엄지손가락 지짐을 당해 3도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분노한 정 선생은 당장 진영이를 불러 전말을 다그쳤지만 진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건 자체를 부인했다. 한 시간을 붙잡고 씨름하다가 지친 정 선생은 몹시 체벌을 한 후 담임과 학년부장에게 진영이를 넘겼다. 결과는 마찬가지. 진영이는 가해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다가 담임에게 두드려 맞고, 학년부장에게 또 스무 대 가까운 매를 맞았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진영이는 가해 사실을 아예 부인할 뿐 아니라 그 시간에 자기는 과학실 앞에 있었노라고 증언하는 친구 두 명을 불러오기까지 했다. 두 손 놓아 버린 학년부장은 사건을 학생부로 넘겼고, 진영이는 그 과정에서 공포의 대명사인 학생부 우 선생에게 모진 매를 마장ㅆ다. 그래도 진영이는 손사래를 치면서 가해 사실을 다시 부인했고, 선배 진영이의 부인에 분노한 피해자 현주는 손가락을 담뱃불로 지지는 것을 보았노라는 친구 세 명을 증인으로 불러와서 맞불을 지폈다. 학생부 교사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교사들은 기진맥진했다. 하루해를 넘기고 난 다음 날도 진영이는 학생부로 불려 갔지만 계속 사건을 부인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게 여긴 현주의 담임은 생활지도 전문가로 소문난 김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곧 김선생의 권고로 피해자인 현주는 여선생 두 분과 마라톤 개별 상담에 들어갔다. 장장 두 시간이 넘는 릴레이 상담이 펼쳐졌다. 그러자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사실은 현주가 방과 후에 남자 친구와 다투다가 그가 라이터 불로 엄지손가락을 지진 것인데, 그 사실을 감추려고 궁리하다가 평소 안면이 있던 불량 서클 선배 진영이를 지목하여 누명을 씌운 것이었다. 그 거짓말은 엄마에게 옮겨 갔고, 엄마는 담임을 닦달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진영이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교사들은 자신들의 경솔함에 부끄러워졌다. 더구나 불량기가 있다고 하지만 진영이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가출해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불우한 처지였다. 사건은 그렇게 끝났지만 상처는 깊게 남았다. 섣부른 판단을 해서 사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정 선생은 미안함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현주는 정학에 처해졌고, 하소연할 곳 없는 진영이의 얼굴에는 불신과 비애의 그늘이 덮었다. 조사 과정에서 수십 대의 매를 때렸던 교사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활지도의 의미' 를 되새겨야 했다. 정 선생은 현주 엄마의 전화를 받은 후 흥분해서 진영이를 불러 체벌하기 전에, 먼저 현주에게 육하원칙에 의거한 피해자 진술서를 쓰도록 하고 기초 조사를 철저히 했어야 옳았다. 엄마의 신고와 아이의 상처라는 분명한 물증에 그만 '선입견' 을 가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최소한 쌍방의 소견을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세거 필요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심성은 단순하지가 않다. 다양한 개성만큼 예측할 수 없는 부적응 양태를 나타낸다. 생활지도는 그래서 뜨거운 열정과 함께 치밀하고 냉정한 판단을 요 구한다. 섣부른 판단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지켜보고 수용한 후 판단은 마지막에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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