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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 검사, 자의성과 위법성을 따져 봐야 한다
작성자 박성은 등록일 11.04.05 조회수 16

3교시 끝나고 조퇴를 하다가 복도에서 학생부 홍 선생을 맞닥뜨린 고1 영미는 소지품 검사를 받다가 분홍색 표지의 일기장을 압수당했다. 그런데 일기장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담배를 소지했을 것으로 의심한 홍 선생은 담뱃갑이 나오지 않자 무심코 일기장을 뒤적였는데, "매일 두세 개비 의 담배를 피며 생각에 잠긴다"는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영미는 상습 흡연자로 몰렸고, 선도위원회는 그 일기 내용을 증거로 영미에게 선도 처분을 내렸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서울 강남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다. 이 사건에 대해 교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한마디로 인권유린입니다. 어떻게 그게 증거가 됩니까? 어떻게 일기를 훔쳐봐요?"

"꼭 일기를 보려고 했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흡연 사실이 적혀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애들 그렇게 안 하면 안 돼요. 처벌해야 마땅해요.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영미는 옛날말로 정학을 먹었고 민주적인 교사들의 비탄에 잠긴 목소리는 묻혔으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곧 조용해졌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정기적인 학년 전체 소지품 검사 때 가방을 검사하고 지나간 후 한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가방 옆구리에 끼워 둔 3만원이 금세 없어졌다는 것이다. 학급 아이들의 눈길은 피해를 호소하는 아이와 가방을 뒤진 이 선생에게 쏠렸다. 의혹에 찬 50여 명의 눈초리 앞에서 자존심 강한 이 선생은 그날 영락없이 도둑 취급을 당해야 했다.

부지불식간에 아이를 세워 뒤지든 전체 학급 아이들의 가방을 일제히 검사하든 '소지품 검사' 는 골치 아픈 딜레마 상황을 야기한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생활지도이고 어디까지가 사생활 침해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사실, 아이들의 호주머니는 유리알처럼 비밀이 없다. 서랍 밑바닥까지 날마다 뒤지다시피 하는 엄마와, 시도 때도 없이 "가방 열어 봐" 를 외치는 선생님, 골목을 돌아서면 가끔씩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내미는 학교폭력 깡패들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주머니는 누구나 뒤질 수 있는 '열린 주머니' 이기 때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한 여고생이 교칙 위반 혐의로 교감 선생님에게 소지품 검사를 당해 마약이 나왔는데도 인권을 침해당했다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오랜 시간을 끌며 재판이 진행되었다. 일심에서는 학생이 승소했고, 대법원에서는 교감이 승리했지만 겨우 한정적인 판결이었다. 교육선진국에서는 그만큼 학생 소지품 검사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도 이젠 이 문제에 대해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소지품 검사의 시점과 이유, 항목 등을 학생회와 협의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칙에 명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뚜렷한 이유 없이 마구잡이로 실시하는 소지품 검사나, 교사라고 해서 마음대로 일기장 따위를 보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근절되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16조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 가족, 가정 또는 통신에 대하여 자의적이거나 위법적인 간섭을 받지 아니하며 또한 명예나 신망에 대한 위법적인 공격을 받지 아니한다' 는 법규는 아이들의 소지품을 함부로 뒤지는 교사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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