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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열등이 잘못된 열성을 낳는다
작성자 박성은 등록일 11.03.28 조회수 17

정말 게으른 지예가 운동을 시작했다. 학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와 음악을 틀어 놓고 격렬한 춤을 추고, 윗몸일으키기와 운동장 뛰기를 반복한다. 그뿐이면 다행인데 문제는 한창 공부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 중2 나이에 아예 밥과 저만큼 거리를 두고 굶기를 예사로 하니 엄마의 속이 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는 효과적이었다. 배가 쏙 들어가고, 옆구리도 날씬해졌다. 그래도 지예는 만족할 줄을 몰랐다. 밥을 거르고 춤을 추고 윗몸일으키기를 반복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 지예가 뚱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예는 타고난 몸매를 지닌 아이다. 어릴 떄는 YMCA 아기 스포츠단을 다니면서 선생님들에게 골격이 이쁘다는 칭찬을 들었던 아이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아이가 다이어트에 몰두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지예는 마침내 각기병 즈세를 보였다. 현기증이 나고 얼굴에 하얗게 버짐이 피고 위장이 쪼그라들어 헛구역질을 했다.영양 결핍으로 뺨은 생기를 잃어 가는데, 그럴수록 다이어트를 중단하기는커녕 속도를 더해 가기만 했다. 비상이 걸린 부모들은 별수를 다 썼다. 끼니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려고 애썼고, 의사인 삼촌은 지예에게 다이어트가 오이혀 건강을 해치고 몸매를 망친다는 충고를 했다. 예뻐지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려 주었다. 그러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충고를 들을 때는 잠시 반짝하다가 곧 다이어트에 빠져들었다. 점점 말라 가는, 아니 점점 죽어 가는 딸을 보면서 부모는 망연자실했다. 학교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아침마다 끼니를 고르고 와서 배가 아프다며 보건실을 찾고 수업 시간에는 지쳐서 엎드려 자는 지예가 천덕꾸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러 가질 의심이 간 보건 선생님은 지예와 개별 상담을 했다.

지에는 외동딸이다. 감성이 뛰어나고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반면에 성적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지예는 중간 이하에서 맴도는 성적을 놓고 매일 과외를 붙이고 조바심치는 엄마에게 이미 질린 지 오래이고, 대학교수인 아빠에게는 지적인 열등감을 느꼈다.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느낀 지예는 마음 잡고 책상 앞에 앉아 보지만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들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정작 승부를 걸 수 있는 분야는 연예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눈총을 극복하고 아빠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린 나이에 빨리 성공하는 것이 최고라는 판단을 내렸다. 마침 지예는 타고난 몸매를 지녔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우선 다이어트를 부지런히 해서 몸매를 더욱 예쁘게 가꾸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예의 다이어트가 집요했던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 승부 걸기' 에 그 동인이 있었다.

보건실의 민 선생은 담임과 협조하여 지예의 엄마를 면담했다. 지독한 다이어트의 원인을 밝혀 낸 담임과 엄마는 치료 방법을 찾아 나갔다. 부모님은 공부 스트레스를 덜어 주어 긴장감을 완화시켰고, 담임은 지예의 특활반을 부모님의 반대로 들지 못했던 연극반으로 옮겨 주었다. 연극을 배우면서 긴장이 완화되고 성취 욕구의 대리 만족을 느끼면서 지예는 차츰 안정을 찾아 갔다. 성적도 조금씩 오르고, 건강도 되찾았다. 원인을 모르고 다그치기만 하면 아이를 잡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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