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체험학습 -노근리 평화공원에 다녀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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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남현아 | 등록일 | 12.06.12 | 조회수 | 29 |
6월 호국 보훈의 날을 맞아 잊혀져 가는 통일 안보의식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노근리 평화공원'을 다녀왔다. 그 곳은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자율활동 시간에 다녀오기 딱 좋았다. 쌍굴다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 자주 지나친 곳이었다. 쌍굴다리의 동그랗고 세모난 표시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평화공원을 견학할 기회가 생겨서 정말 좋았다. 이번 체험학습을 통해 6.25전쟁에 대해서는 알고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견학을 했다. 도착하자 마자 안내 선생님이 10분 정도 6.25전쟁 당시 사건을 얘기해주셨다. 1950년에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북한이 강력한 무기인 탱크를 가지고 남침하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UN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노근리 사건은 6.25전쟁 한달 후인 7.25일날 일어났다. 주곡리 주민들은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도 '설마 우리같은 농민들에게는 총격을 할 리가 없다. 무사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모 심기에 한창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뒤 UN군은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고, 주민들은 임계리에서 공포와 불안 속에서 벌벌 떨며 일년 같은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리고 25일날 아침, 유엔군은 이곳 주민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을 가다 서송원에서 철도로 올려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무전을 하더니 비행기가 날라와 폭격을 했고, 사람들은 이유없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 폭격 속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죽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훼손되어 있었다고 한다. 평화 기념관에서 본 동영상은 그 폭격 속에 살아 남으신 어르신들이 들려 주시는 전쟁 당시 이야기였다. 비행기의 폭격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었다고 했다. 폭격을 맞은 소는 피가 용솟음칠 정도이니 살아 남은 사람이 희박했다고 하셨다. 살아 남은 사람이라도 몸에 큰 부상은 물론 가족을 잃어 지금까지도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계셨다. 기념관을 견학하고 나서는 쌍굴다리의 총격 흔적을 보러 갔다. 그 곳에서 동그랗고 세모난 표시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그 흔적들은 모두 미군들의 총격 흔적이라고 한다. 세모난 표시에는 아직까지도 탄두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당시 유엔군은 400명 가까이의 피난민들을 쌍굴다리에 가두고 3박 4일동안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아직도 유엔군은 우리나라에 사과 한마디도 없고, 겨우 유감 표시로 묻어버리려고 하고 있다. 이 사건 또한 역사속으로 묻힐 뻔 하였지만 정은용 할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미국 AP방송에서 보도된 후 점점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뒤이어 이 사건이 결코 잊혀지지 않도록 많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그러려면 북한과 남한이 평화 통일을 해서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를 하며 세계로까지 발을 넓히고 막대한 국방비와 군사력의 낭비를 막으면 우리나라는 점차 성장할 것이다. 하루 빨리 통일이 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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