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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동안의 모험
작성자 박예슬 등록일 12.11.20 조회수 68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래. 왔니?"

"네."

평소와 같다. 엄마는 컴퓨터 자판을 탁탁 두드리며 나의 인사말에 짧게 대답하고,나도 엄마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은채 내 방 문을 열며 엄마의 대답에 건성으로 대답 했다. 이게 우리 집 오후의 풍경이다. 아니,내가 학교에 다녀온 후의 풍경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난 방으로 들어와서 등에 피로처럼 붙어있는 가방을 책상에 던지 듯 놓고,침대로 벌렁 누워버렸다. 어제 밤 늦게까지 웹툰을 봤더니 마치 '피로'라는 이름을 가진 강에 빠진 듯 피곤했다. 그때가 3시였다. 그리고 그렇게 난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아~흠..잘 잤다.. 역시 잠을 잤더니 피로가 싹 풀리는군..'

난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한 마디로 딱 설명하기는 어려운.. 그런게 있었다. 나의 손을 보았다. 그 길던 손가락이 짧아졌고,손톱은 평소와는 달리 단단해져 있었다. 그 순간 난 비명을 꽥 질렀다. 목소리도 이상했다. 난 "엄마!"라고 외치며,거실로 달려가려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다시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아무리 다리에 힘을 주어도 두 발로 설 수가 없었다. 결국 열려있는 방문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거실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컴퓨터 앞에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탁탁 치고 있었고,전체적인 분위기와 가구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난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살금 살금 집 한 구석에 있는 창고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깨져서 쓸 수 없는 거울이 있었다. 난 얼른 거울로 내 모습을 보았다. 뜨악! 난 나의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사람이 아닌 분명한 애완견의 모습이었으니까.. 아니! 애완견이 아닌 사람의 얼굴을 가진 정체 모를 동물의 모습이었다. 다시 난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소리 내었다. 하지만 얼굴과는 달리 목소리는 정녕 숨길 수 없는 동물의 소리였다. 그 순간이었다. 닫힌 창고의 문이 벌컥 열리는 것이었다!

"또삐! 내가 얼마나 찾은 줄 알아? 일어났으면 기척을 해야지.. 컴퓨터하다가 얼마나 놀랐다구~"

허걱.. 난 그만 그 사람인지 뭔지의 모습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멍멍!"

"어머~ 또삐! 또 놀랐잖아! 날 보고 왜 짖어! 이리 와. 여기 있으면 안돼~!"

난 반강제로 그 머리는 동물인데 몸은 사람인 이상한 동물에게 안겨서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참 이상했다. 그 주인인 동물의 얼굴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삐삐! 그 잠깐 사이에 또 사고를 쳤어!"

아.. 그 사고를 친 삐삐라는 개는 우리 엄마였다.

"주방에 있는 모든 요리 도구를 꺼내 놓으면 어떡해!"

엄마도 많이 당황했나보다. 저렇게 눈동자가 주체없이 흔들리는거 보니까. 하.. 그것보다 모두 어떻게 된 일이지.. 역시 나쁜 나의 머리로는 해결할 수 없구나.. 머리가 너무 아프다.

 

자꾸만 하품이 나왔다. 사건이 터진 어젯 밤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뜬눈으로 밤을 지세웠더니.. 그것보다 어제인지 오늘인지 아무튼 밤에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나의 머리에 감탄을 할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그 낯이 익는 주인 동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 동그란 눈과 까만색 코를 가진 순한 얼굴.. 그것은 어제 하교를 하고 집에 올 때 나를 졸졸 따라와서 귀찮게 하던 그 길고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발로 뻥하고 차주었던.. 하하하! 근데..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지.. 어떡해.. 나 매일 사료만 먹고,컴퓨터 게임도 못하는데.. 어떡해.. 아.. 역시 난 바보였다. 그 상황에서도 자꾸 잠이 온다. 눈이 자꾸만 스르르 감긴다. 결국 난 달콤한 잠의 세계에 빠지고야 말았다. 아.. 꿈인가.. 난 끝을 알 수 없는 계단 중간에 서 있었다.

'이게 뭐지?'

머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리는 계단을 밟고있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계단도 어느새 끝이 보였다. 마지막 계단으로 올랐을 때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앞에는 동화책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령이 있었으니까. 그 신령이 날 보더니 손가락을 까딱 거리며 뭐라고 말한다. 오라는 말인가? 난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얘야. 어제는 갑자기 그렇게 모습이 변해서 많이 놀랐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그것은 나의 도술이었으니까. 네가 알고 있 듯 어제 넌 길고양이가 널 귀찮게 한다고 학대를 했지. 이것은 그로 인한 벌이야. 넌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48시간 동안 그 모습으로 있어야 할거야. 총 72시간 동안이지. 알겠느냐? 아! 그리고 그렇게 편하게만 있으면 벌이 아니지. 지금까지는 나도 양심이 있고 너랑 초면이어서 최대한 널 편하게 하면서 벌을 내리려 했지만 네 얼굴을 이렇게 보았으니 더 엄하게 벌을 내려야 할 것 같구나. 넌 지금 이 순간부터 길고양이가 되는거야. 그리고 넌 세계의 모든 길고양이의 심정을 이해해야해. 진심으로 말이지. 넌 날 속일 수는 없어. 만약 48시간 이내에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24시간씩 시간이 자동으로 늘어나면서 그 모습으로 계속 있어야해. 참! 그리고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하므로 네가 모래시계를 볼 수 있도록 항상 널 따라다니게 해주지."

"네?! 아니 그게 지금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씀이십니까? 그냥 딱 한 번 발로 찬 걸로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

"딱 한 번 발로 찬 게 그 길고양이에게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가져다 준 줄 알아?!"

"아무리 그래도..!"

"어허! 어허! 그렇게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어! 어서 썩 물러가거라! 더 큰 벌을 주기 전에!"

굳이 내가 물러갈 필요는 없었다. 그 말을 마치고 신령은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리고 난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와 동시에 난 또 다시 놀라운 일을 접하게 되었다. 분명 나는 폭신 폭신한 침대에서 낮잠을 청했는데 지금 난 좁은 골목길 가운데서 엎드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덩치가 엄청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서 있었다. 난 놀라서 펄쩍 뛰었다.

"멍!"

"이야아아옹!"

어? 정말 신기했다. 분명히 고양이는 동물의 울음 소리를 냈는데 무엇을 말하는지 다 들렸다.

"내 자리야! 비켜!"

"아..알았어.."

난 조심 조심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때 고양이는 이전과는 달리 슬픈 눈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너도 주인한테 버림 받았냐?"

"어?"

"주인이 널 버렸냐고."

"아니. 난 주인 같은건 없는데."

"그래? 넌 좋겠구나."

"응? 뭐가 좋아?"

"여기 있는 모든 고양이들은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어.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지. 근데 넌 주인이 없어서 상처를 받지 않았잖아. 그리고 그리워할 사람도 없고."

"아.. 근데.. 여기 있는 고양이들이라니?"

"여기 있잖아. 안 보여?"

그 순간 골목 여기 저기서 별처럼 반짝이는 수 없이 많은 두 개의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야옹."거리는 고양이의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아.. 그렇네.. 여기 저기 많네.. 하하하..하.."

"그렇지?"

"근데 주인이 왜 너희들을 버려?"

"그건 우리도 몰라. 갑자기 버렸어,우리를."

"그렇구나.."

"그래서 우린 모든 인간들이 너무 싫어. 특히 자기들이 좋으면 애지중지 했다가 싫어지면 버려버리는 그런 간사한 행동을 하고,우리가 지나가면 비키라고 발로 툭툭 차는 그런 인간들은 더더욱 싫고."

"음.."

"얼마 전에도 어떤 학생이 나의 귀여운 딸을 발로 뻥 차버렸어. 그래서 옆구리에 어마 어마한 상처가 났다구."

'그.. 그.. 그거.. 설마 내가 한 짓인가..'

"하.. 넌 이렇게 말해도 이해를 잘 못하겠지?"

"아.. 아니야.. 이해가 잘 돼.. 엄청.."

난 그 말을 남긴 채 돌아서서 뚜벅 뚜벅 걸었다. 길고양이에게 미안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발로 찬 것이 지금의 내 힘으로는 무찌를 수 없는 힘 센 고양이의 딸이라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서 그 자리를 피한 것이었다.

'으.. 오싹하다.. 순간 닭살이 돋았어..'

난 이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앞에는 사람들이 많은 시내가 펼쳐져 있었다. 난 북적거리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발을 피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조금 지나니 공원이 나왔다. 난 여유있게 공원을 걸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몸이 갑자기 공원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 부딪혔다. 그리고 어떤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바보! 바보! 큭.. 역시 떠돌아 다니는 동물들은 다 바보라니까~!"

그렇다. 그 아이가 날 발로 찬 것이었다. 난 마음 같아서는 똑같이 되갚아 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인간들이 날 보지 못할 때 즈음 난 내 몸 구석 구석을 훑어 보았다. 발로 차인 옆구리에 상처가 나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눈물이 찔끔 나올만큼 많이 욱신 거렸다. 벌써 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기에는 하늘은 너무 어두워졌다. 결국 난 그곳에서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난 몸을 움츠리고 눈을 감았다. 초가을이라서 그런지 밤공기는 꽤 쌀쌀했다. 오늘 하루종일 이리 휩쓸리고,저리 휩쓸리며 다녔더니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갑자기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다들 어디서 무얼하는지 궁금했고,보고 싶었다. 그리고 감은 나의 두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난 힘겨운 하루를 보냈다.

 

난 어제와 같은 하루를 시작했다. 사람들을 피해 다녔고,너무 배가 고파서 사람들이 버린 먹을만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배를 채웠다. 또 지저분해진 몸도 씻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일을 겪으면서 길고양이들의 심정을 알게 되었고,그렇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 미안했다. 난 사람들을 피해 으슥한 골목에서 엎드리며 휴식을 취했다. 갑자기 모래시계 속의 모래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난 모래시계를 보았다. 모래는 거의 다 내려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유심히 그 모래시계를 보았다. 마지막 모래 한 알이 다 내려가고 내가 엎드려 있던 으슥한 골목이 갑자기 어제 신령과 얘기를 나누던 곳으로 변했다. 난 벌떡 일어났다. 신령이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을 했다.

"이제 알겠느냐?"

"네.. 제가 했던 행동이 나쁜 것인지 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젠 도둑질만큼 나쁘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지.. 진심으로 깨달은 것 같고,시간도 다 되었으니 네 모습을 되돌려 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신령님!"

신령은 대답을 하지 않고 무슨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는 두 눈을 부릅 뜨고 장풍을 쏘아 올리는 듯한 손동작을 하였다. 그랬더니 나의 몸은 저 멀리 날아가서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난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나는 벌떡 일어나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나의 손을 보고,얼굴과 몸을 훑어보았다. 그제서야 난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우야! 밥 먹으러 와!"

엄마의 목소리였다. 벽시계를 보았다. 5시였다. 난 힘겹게 일어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침대에 강아지의 털 같은 것과 처음 보는 얼룩이 묻어 있었다. 난 고개를 갸우뚱하고 저녁을 먹으러 방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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