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기 쓸 내용이 두 가지 정도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바나나 껍질에 관한 간단한 고찰이고, 둘은 족구할 때 얻은 약간의 심득이랄까.
첫째는 바나나 껍질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늘 엄마가 바나나를 싸줬다. 그래서 1교시 과학이 끝나고 하나 까 먹었다. 성제가 계속 와서는 조금만 달라고 했다. 나는 내 조상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는 대로 원숭이라서 바나나를 먹어도 되는데, 너의 조상은 원숭이가 아니니까 먹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성제가 계속 달라고 그래서 내가 끄트머리를 조금 떼주었다. 그런데 이 놈의 우성제가 줘도 또 달라고 그래서 단호히 거부했다. 남은 것은 내가 다먹고 껍질을 들고 3학년 교실 앞에 소파로 갔다. 그런데 철빈이형이 나보고 자기도 바나나를 달라고 해서 껍질이라도 먹으라고 줬다. 그걸 받더니 우섭이형한테 던졌다. 우섭이형이 그거를 다시 나한테 줬는데 누군가가 그거 밟으면 넘어지는지 물어봤다. 나는 옛날에 어렸을 때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바나나 껍질은 모르고 밟아야지만 넘어진다는 간단한 실험을 한 것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그냥 밟으면 돌면서 넘어진다. 그래서 복도에 깔아놓고 한번 밟아봤다. 순간 밟은 내 오른쪽 발이 미끄러졌다. 이런 바나나껍질은 게임에서만 넘어지는게 아니었어. 간단한 실험이었다.
두번째는 족구할 때 얻은 약간의 심득인데, 이 심득이 뭐냐하면 나는 본래 수비다. 공격은 젬병이다. 찍는 건 고사하고 제자리에 띄우는 것도 약간 이상하다. 나는 수비라서 약간 앞에만 띄우면 되니까 그게 좋다. 오늘 만원이 걸린 족구 시합을 했는데 이 심득을 했다. 성제가 자주보니 'One piece'라는 만화에서 나오는 견문색 패기랑 비슷하려나. 그러니까 이 견문색 패기라는게 뭐냐면 상대의 움직임이 미리 알아맞춰서 그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3~4번 밖에 실수를 안했다. 이 실수도 헤딩 좋게 띄우려다가 백헤딩을 한 것이 두번이고, 받을 수 있는 서브인데 남형우가 길을 막고 있어서 가지 못한 것이 두번이니까 4번이 맞는 것 같다.
어제는 영쌤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했다. 보통 형들은 찍어봐야 수비라인 쪽으로 오기때문에 그냥 좌, 우로 움직이면서 받으면 됐다. 그런데 영쌤은 그렇게 찍는 것 같다가도 방향을 꺽고 공격 약간 뒷부분으로 보냈다. 그리고 보통 왼발잡이가 찍는다면 공은 내가 있는 왼쪽방향으로 날라오고, 오른발잡이가 찍는다면 대부분 나의 오른쪽에 온다. 가끔 중앙으로 올때도 있고 우리 진영의 중앙쯤에 찍힐 때도 있다. 그때는 그냥 냅다 뛰어서 받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제 영쌤의 공을 보고는 약간 각성을 했다. 어제는 두번정도 예측을 했는데, 한번은 제대로 받았는데 한번은 공이 너무 빨라서 못받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예측이 되었다. 상대팀 수비가 공을 좋게 띄워주면 공격은 그것을 찍는다. 이때 방향은 누구도 모른다. 자기가 그냥 찍고싶은 방향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예측했다. 성제야 헤딩밖에 할 줄 몰라서 못하는데 나는 왠지 발의 모양이 앞쪽에 찍을 것 같아서 나가니까 정말 앞으로 왔다. 내가 작년 4월달인가 5월달부터 족구를 했으니 1년하고도 1달 2달 정도를 하니까 득도한건가? 어쨌거나 좋군. 이거 이러다가 날아오는 총알도 피할 기세다. 아주 좋은 패기다! 어제 쓰던 글 오늘 마저 쓰다 보니 거의 글이 전반에는 어제 것이고, 후반에는 오늘 것을 써서 이제 글을 마저 써도 어제의 입장에서 쓰기로 했기때문에 오늘 있었던 약간의 패기에 대해서는 못쓸 듯 하다. 하여튼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나는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이기에 1년 정도 하고 선수급이 되었어. 아아 좋군. 안 그래도 오늘 족구 끝나고 형들이 가을에 대회나갈때 나는 꼭 나가야 된다고 했는데 말이지. 공격은 병찬이형이나 주영이형이나 성훈이형처럼 잘 찍고 잘 살려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철빈이형은 찍으면 엄청 잘찍는데 기복이 너무 심하다 이거지. 우섭이형은 수비니까 상관없고. 권동혁이는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수비한 것 밖에 기억이 안 나니까 됐고, 조규상이는 영쌤처럼 약간 얍삽하게 잘 찍는데 가끔 실수도 많이하고 이젠 그렇게 찍어도 나는 심득했으니까 상관없으니까 안 넣어도 될 것 같다.
쓰다보니까 작년 태웅이형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작년에는 3팀으로 안하고 2팀으로 해서 그냥 밥먹고나면 아무데나 골라서 들어가면 되었고, 올해는 많이해서 그런가 가끔 재미가 없어져서 태웅이형이 족구하면서 자기한테로 엄청 빠르게 오는 공을 매트릭스에 나오는 것 처럼 몸을 꺽어서 피하던 그 모습도 그리워진다. 하여튼 결론은 바나나 껍질은 모르고 밟으나 알고 밟으나 넘어지긴 하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고, 족구할 때엔 심득했으니까 어디로 올지는 알았고, 이제 내가 원하는건 무협지에서 자기 마음대로 검을 움직이는 이기어검처럼 나도 공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경지이다. 진짜 이거 하나만 되면 바랄게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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