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요일이라서 2,3교시가 미술이었다. 미술 시간에는 지난 번 시간부터 유리병에 지점토를 붙여서 뭘 만들기를 하는 것을 했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그리면 졸라맨이요, 만들면 외계인이라 미술은 포기하고 있다가 작년에 미술 수행평가 망치고 나서 조금 열심히 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시간에 만든 것을 보니까 역시 외계인이었다. 그래서 다 떼고 동물을 만드려는데 처음에 일단 냅다 네 다리 부터 붙이고 동그란거 하나 더 만들어서 꼬리랍시고 하나 달았다. 그 다음에 뭐할지 고민하다가 장식이나 하나 더 만들자해서 링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미술선생님이 내가 딴 짓하는 줄 알고 나보고 태도 점수를 감점하겠다고 하셨다. 내가 어이가 없어가지고 이거 머리에 붙일 거라고 하니까 뭐 다른 애들은 다 많이 했는데 나만 진도가 떨어진다고 하시다가 전에도 판화를 망쳤다고 꾸중을 하셨다. 탈무드에서 보니까 무슨 여우가 양을 잡아먹으려고 하면서 온갖 말을 다 하다가 양이 번번히 대답하니까 나중에는 자기가 배가 고프다면서 잡아먹더라니 그거랑 똑같은 상황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냥 하던거나 열심히 했다. 지점토를 만들다가 몇번 떨어트려가지고 다 버리고 하다보니까 영 귀찮아 졌다. 그래서 포기하고 거북이를 만들기로 했다. 거북이야 일단 만들어 놓은 네 다리와 몸통에다가 짧은 목과 반짝반짝 빛이 나는 대머리를 붙이고, 썰렁한 척추 쪽에는 거북이 등껍질이랍시고 모양만 비슷하게 만들어서 그냥 가져다가 붙이면 되는 거니까 한번 만들어봤다. 일단 다리가 짧은게 거북이같이는 생겼다. 근데 머리를 붙이다가 목이 너무 긴 것 같아서 머리에 목을 붙이고는 반을 접어서 몸통에다 붙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목이 없다. 순간적으로 이건 망쳤다는 직감이 왔다. 그래서 포기하려다가 또 미술선생님께서 태도점수 어쩌느니 하실 까봐 그냥 계속하는 척을 했다. 목이 없는 것은 그렇다치고 내가 예상했던 동글동글한 눈은 어디로 가고 놀란 듯이 튀어나온 동그란 물체에다가, 껍질은 등에 무늬를 안 넣었더니 이게 뭔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건 필시 돌연변이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미 시간은 흘러갔고 가져온 지점토는 등껍질 만든답시고 다 가져다가 붙여서 뭐 할게 없어서 그냥 마무리를 했다. 일단 손을 씻고 이 돌연변이 거북이는 어디로 가져다 놓아야 할지 몰라서 박재용한테 물어보니까 미술실에 가져다 놓으라기에 그 미술실 칠판에 올려놓았다. 아마 오늘 올 때도 그 곳에 있었으니까 거기가 맞는 것 같다. 이거 나중에 색칠한다고 하는데 색칠하면 더 망할 것 같다. 그때에는 돌연변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괴생물체가 될지도 모른다. 올해도 미술 수행평가 점수가 심히 걱정이 된다. 그런데 나는 내가 보기에도 미술을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간의 발전이 있었으니 앞으로 60년만 더 살면 그림 잘그리는 중학생 수준은 될 것 같다. 아니면 피카소처럼 추상적으로 그리는 방법도 있다. 그게 싫으면 잭슨 폴락처럼 밑에다가 종이 깔아놓고 큰 붓을 사다가 물감을 찍은 다음에 무의식중에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답 시고 막 뿌려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