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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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지수 | 등록일 | 15.12.24 | 조회수 |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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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옥천삼양초 사서교사 이지수 지금은 휴학 중이지만, 몇 해 전 학부 4년 동안 공부했던 문헌정보학을 뛰어넘는 기록관련 전문가가 되기 위해 서울 모 대학의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적이 있다. 그동안 사서로 근무하면서 단순한 활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 ‘기록’의 힘을 믿게 되었고, 그러다 가치 있는 기록을 선별하고 가르는 기록관리학의 중심에 서고 싶었다. 공부를 하던 와중에 우연히 예술의 전당에서 구술채록에 관련된 연수를 듣게 되었다. 원래 전공이 ‘문헌정보학’인지라, 그동안 기록이라 함은 단순한 책 형태의 것만 기록이라 생각해 왔는데, 구술채록 연수를 들으며 기록의 범위에 포함되는 영역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되었다. 기록은 단순히 활자형태로 된 것 뿐만 아니라,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들, 역사적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사진까지도 포함되었다. 연수 기간 내내 원래 학부 때 전공이 사진이거나 무용이었던 사람들이 기록관리에 관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보면서 신선한 자극도 함께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는 저자가 수년간 많은 이들을 인터뷰한 것을 소설화한 것으로, 단순히 픽션에 머무는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저자만의 이러한 인터뷰-인터뷰이 방식의 소설은 ‘목소리 소설’로 부른다고 한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이었기 때문인지, 전쟁에서의 상대적 강자인 남성들 중심의 사고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여성중심의 기록을 남긴 탓인지 이 책은 원고가 완성된 1983년 이후에도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2년간이나 원고상태로 머물게 된다. 무려 32년간의 세월이 지난 후인, 바로 지금 2015년에야 이르러서야 비로소 책의 가치를 인정받고 2015년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되었다. 전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승리자’ 중심의 기록으로 남겨진다. 또한 그 승리자들 안에서도 여성은 배제되고, 남성중심의 영웅담이 만들어지고 전해지며 여성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페미니스트적인 발언이 아니며, 단순히 어느 한쪽에서 옳다 그르다 말을 하려는 것 역시 아니다. 다만 이 책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터뷰 중심)에 의하자면, 여성들 역시 남성들과 동일하게 일분일초를 다투는 전쟁통을 똑같이 겪었으며, 살아서도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본디 남녀 성향이 다르기에 오히려 어떤 여성들은 본인들 스스로 전쟁 속에서 남성들과 똑같이 싸웠다는 흔적을 지우고자 노력했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전쟁 속에서 나와 똑같은 사람을 쏴죽이고서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 피를 묻은 손으로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양육한다는 사실에 죄의식조차 느끼는 듯했다. 이 모든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전쟁 그 자체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들 역시 똑같이 피해자일 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이름부터 길고 낯설다. 물론 딴 나라 얘기라고 단정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도 전쟁을 겪은 나라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미래를 구상해야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와 똑같은 사람,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으며 그 공감대 속에 이 책을 읽다보면, 남녀를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던 한 명, 한 명의 인간들에 대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불쌍함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바로 이러한 공감과 두려움 섞인 경이로움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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