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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영혼을 가진 모차르트를 읽고....(4학년1반 이은지)
작성자 이은지 등록일 11.01.06 조회수 143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음악가 모차르트

 

글 고희경

 

그림 조신애

 

한국차일드아카데미

무극초등학교

4학년 1반 9번 이은지

 

 

모차르트는 1756년에 태어나 1791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아기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유명한 음악가였다.  하루는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모차르트의 누나 난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모차르트는 아버지께 졸라 피아노를 치고싶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할수없이 피아노 의자에 모차르트를 앉혀 주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방금 난넬이 친 곡을 그대로 치기 시작하였다.  3살배기 꼬마의 연주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꼬마 모차르트의 소문은 금세 온 도시에 퍼졌다.  귀족들은 앞다투어 모차르트를 초대해 연주회를 열었다. 다섯살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한 모차르트는 자기가 직접 만든 곡을 연주하기도 했지요.  아버지는 모차르트 남매를 데리고 연주여행을 나녔어요.  모차르트의 맑고 경쾌한 연주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답니다.  여덟살 되던해, 모차르트는 바흐에게 음악을 배우게 되었어요. 바흐는 모차르트에게 오페라가수 만초리의 노래를 듣고 난후부터 모차르트는 오페라의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바흐의 오페라 공연을 본 뒤로 더욱 깊이 빠졌답니다.  어느날 모차르트가 이탈리라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안은 미제레레 라는 성가곡이 울려퍼지고 있었어요.  미제레레곡은 성당 안에서만 들을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미제레레악보가 성당 밖으로 나가면 큰 벌을 받기때문이지요. 모차르트가 집에 오자 모차르트는 오선지를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오선지에 쓴것을 보니까 그곡은 미제레레 악보였어요.  모차르트는 그 복잡한 미제레레를 모두 외었던 것이예요.  이 소문은 시스티나 성당까지 알려졌어요.  그런데 대주교는 모차르트가 쓴 악보를 보고 모차르트에 게 큰 상과 함께 황금 박차 훈장 을 주셨어요.  모차르트는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슬픈소식이 있어요.  영주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궁전악단에는 새로오신 영주님이 오셨지만 그영주님은 아무때나 연주회를 열고,음악여행은 못가게했어요.  그래서 모차르트는 성당 악단일을 그만두었지요. 그런데새로운 일자리 구하기가 무지 어려웠어요.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이젠 천재 음악가가 아니라 가난한 모차르트였답니다.  스물여섯살리 되던해 모차르트는 콘스탄체 베베라는 아가씨와 결혼했어요.  많은 작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가난했어요.  추운 어느날 친구들이 찾아왔는데 모차르트 부부는 땔감이 없어서 춤을 추다가 친구들을 발견했어요.  어느날 모차르트는 피카로의 결혼을 읽고 마음을 빼았겨 피카로의 결혼이란 제목을 갇고 오페라를 만들었어요.  피카로의 결혼덕에 모차르트는 세계적인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답니다.  어느날 고향에서 편지 1통이 왔습니다.  아버지의 병이 아주 깊다고 편지가 왔어요.  모차르트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작곡을 멈추지 않았어요.  얼마뒤 돈 조반니를 안성했어요.  어느 비오는 날 한 남자가 레퀴엠이란 곡을 써달라고 했어요.  레퀴엠을 쓰는 모차르트는 쓰면 쓸수록 힘이 없고 자꾸 쓰러질때가 많아졌어요.  너무 무리한 모차르트는 결국 서른 다섯살인 젊은 나이에 자리에 눕고 말았어요.  모차르트의 묘는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어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은 오늘도 우리 가슴을 적셔 주고 있답니다.  나의 꿈은 피아니스트입니다. 난 모차르트처럼 짧은 생애를 살기는 싫지만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곡을 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치는 아름다운 곡을 들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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