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출신- 11월의 독립운동가, 이상운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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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용구 | 등록일 | 12.11.12 | 조회수 | 237 | ||||||
충북 청원 사람이다.
이리농업학교 재학중인 1943년 동교생 장지환(張志煥)·김 구(金九)·호중기(扈仲基)·김직수(金直洙)·서기용(徐基容)·박기춘(朴基春)·강동석(姜東錫)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항일결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고, 동회의 대표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화랑회는 일제식민통치에 대한 항거를 목적한 행동결사로서 무력봉기를 계획하였다. 이들의 행동방략은 우선 총기 및 폭약 등을 탈취하여 무장을 갖춘 후 주재소 및 경찰서를 습격하고, 또 만경교를 폭파함으로써 일제의 수탈통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 첫 번째 계획으로 폭약 및 총기를 탈취하기 위해 김제군 금구면 오산리에 있는 일인의 광산을 습격하고, 그의 주도아래 동지 20여명이 광산에 잠입하였으나 일경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이들은 거사를 재차 계획하는 한편 회원간의 체력 및 무술단련에 힘을 쓰면서 무기 확보에도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화랑회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1945년 4월에 전회원이 피체되었다. 이때 일제는 구류기간을 연장하면서 어린 소년들에게까지 치안유지법을 적용하여 3개월 동안 잔학한 고문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피체 후 그는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 굴하지 않고 다른 회원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끝까지 항거하다가 1945년 7월 17일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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