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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에 연재된 교장 신부님 칼럼(2009년 10월 12일자)
작성자 이광재 등록일 09.11.13 조회수 927

  2009년 10월 12일자  충청투데이에 연재된 교장 신부님 칼럼기사입니다.


제목 : 상습범 할아버지 

 

한번은 모 성당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 신부님이 와서 밤늦게 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는였데 전화가 걸려왔다. 이렇게 늦은 밤에 웬 전화일까? 하면서 전화를 받으니까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할아버지는 지금 자신이 무척 아프니까, 신부님이 빨리 와서 아플 때 주는 병자성사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이 아프시냐?"고 했더니, "지금 죽겠으니, 빨리 좀 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전화상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신학생님이 "신부님, 그 할아버지는 조금만 아파도 신부님을 부르는 분인데요. 아주 상습범입니다. 속지 마세요. 지난번 신부님들도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종부성사 가방을 들고 가셨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곤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 할아버지 집 근처에 회장이 계시다고 해서 우선 회장께 이 사실을 알리고 제가 가야 하는지 아니면 다음에 가도 되겠는지를 여쭈어 보고자 했다. 그래서 회장께 전화를 했더니, "지금은 별로 위중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신부님이 전화로 잘 타이르시라"고 했다. 다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 제가 이틀 후 그 지역에 가는 날인데, 그 날 미사를 하고, 할아버지 댁으로 갈께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날 살펴보니까, 그 곳에 가는 날이 이틀 후가 아니라 삼일 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하루 더 있다가 가도 되겠지 뭐"하고는 다음날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늦은 밤에 전화가 걸려 왔다. 잠을 자다 말고 전화를 받아 보니까 그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신부님, 저 지금 아퍼 죽겠어요. 왜 오늘 오신다고 하시더니, 안오셨어요?"라고 하면서 막 화를 내는 것이었다.


"오늘 가려고 했는데 살펴보니까 내일 가는 날로 되어 있어서 내일 찾아 뵈려고 합니다”고 했더니, “저 지금 죽을 것 같으니까, 아, 빨리 좀 오셔요” 하면서 막 떼를 쓰는 것이었다. 지금 죽을 것 같다는 말에 할 수 없이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부랴 부랴 옷을 갈아입고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아, 신부님, 저 지금 아퍼 죽겠는데, 왜 지금에서야 오는 것예요"라고 아주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도대체 곧 죽을 사람이 자기 죽게 되었다고 일어나서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하고 투덜 거리면서 ‘야 이거 또 속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후 "할아버지, 아프더라도 잘 견디시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걸려온 전화를 받아 보았더니 할머니 목소리였다. 할아버지가 신부가 가자마자 바로 운명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만일 떼를 쓰는 할아버지의 청을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하며 늦게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잘 다녀왔다는 생각에 오히려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아마 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그 일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 현재 이 순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곤 한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 지금 해야 할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할 것은 지금 바로 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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