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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을 읽고(5학년 3반 권보람)
작성자 권보람 등록일 16.11.11 조회수 102

유관순

나는 "유관순"을  읽고 나서 눈물이날 만큼 마음이  아팟다...

왜!! 우리 나라는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유관순과 같은 어린 여학생을 감옥 에서 죽도록했을까?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이순신 장군이

쳐부수어 버린 것처럼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일본군을 쳐부수어 버렸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았기고  몇년 안돼서 고종을  페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키면서 순종을 하인 부리듯이 허수아비 노릇이나 하게하고 거기다 국모인 명성화후 까지 죽었으니 일본이 얼마나 나쁜 나라라는 것을 알수 있다.  또 우리의 독도 까지 자기나라의 땅이라고 우기는 것을 보면 정말 이지 일본은 나쁜 나라 라고 생각 하는 날이 있다 일본에게 나라를 뺴앗긴 일제시대 동안 우리나라의 수많은 애국자들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유관순은 충청남도 병천면 용두리의 지령 마을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13살이 되었을때 유관순은 선교사의 도움으로 서울에 올라와 이화학당에 다니게 되었다. 이화학당에 다니는 동안 유관순은 다른 학생들의 모범이 될 만큼,성실하게 생활하였다. 방학이 되면 집으로 내려와서 쉬지 않고 교회를 빌려 동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유관순은 어린 나이였지만 뜻있는 일을 한 훌륭한 학생이었다. 나는 내가 할일도 제대로 못해온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겟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보았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유관순은 친한 친구들도 함께 거리로 뛰어나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했다. 곧바로 일제가 이화학당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할 수없이 고향으로 내려온 유관순은 다시 독립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어린 유관순이 고향 이웃한 지방을 돌아다니며 만세 시위에 나오라고 권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 주었다. 을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리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어섰다. 어린 유관순이 용감하게 앞장섰기 때문에 모두 힘이 솟았다. 그러나 유관순과 사람들은 일본군에게 당하고 말았다. 유관순은 일본군의 기지로 끌려갔고 유관순은 일본군에게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고 말았다. 잔인하고도 참옥한 고문에 유관순은 쓰러지는 날리 많았다. 참혹한 고문 속에도 끝까지 대한민국을 외쳤던 유관순언니는 결국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삼일절이 돌아오면 우리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영원히 지지않는 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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