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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도 행복을 - 「안네의 일기」를 읽고
작성자 박채니 등록일 15.02.04 조회수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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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도 행복을 - 안네의 일기를 읽고

      

부모님은 종종 나에게 물으신다. “채니야, 행복하니?” 그럴 때 마다 힘들거나 짜증이 날 때에도 난 무조건, “당연히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오래전에 집안 청소하는 엄마에게 엄마, 행복해?” 하고 물은 적이 있는데, “네가 행복하면, 엄만 당연히 행복하지.”라고 말씀 하셨을 때부터 나는 앞으로 누군가 나의 행복을 물으면 쭉 행복하다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이 나 때문에 불행하다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믿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대답하면 정말로 행복해 진다.

행복에 대해서 안네는 키티에게,

< 막상 그렇게 즐거웠던 때에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그런데 지금에 와서 진지하게 돌이켜보니, 좋은 시절을 영원히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하긴 작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불평이 심했어.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서 비난을 받는 아이였고. 하지만 이제 나도 10대의 중반에 접어들었고, 조금은 어른이 된 거야. “이 세상에 착한 것, 선한 것, 사랑스러운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밤이면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하곤 해.>

행복을 전쟁 중에 느껴서 약간 아쉬울 수도 있지만, 안네가 지나간 시절이 행복했었음을 느끼고 기도하는 순간인 현재만큼은 평화로워서 정말 행복했을 거라는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는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 행복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보았다. 왜냐면 행복은 정말 중요하니까 말이다. ‘즐거우면 행복할까?’생각해 보았는데 행복해서 즐거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태인을 말살시키려는 히틀러는 유태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즐거웠을 테지만 절대 행복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행복은 그렇게 야비한 잔인함 속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니까.

 

키티는 안네가 자신의 일기에 붙여 준 이름이다.

나도 예전에는 안네처럼 사물에 다양한 이름을 붙이는 취미를 가진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겨울철에 가장 반짝이는 별인 시리우스에 셀바스라고(아마존 열대우림의 이름을 뺏어서 나만의 셀바스라고) 붙여주었다.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가 힘들면 셀바스에 가서 쉬라고, 또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님프의 이름인 에코를 나의 피아노에 붙여준다든지,

아니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내 컴퓨터에 코피 터지게 즐겁게 해준다를 뜻하는 피코.

물론 지금은 데코레이트 같은 어떠한 것을 다양하게 꾸미는 취미가 새로 생기기도 했다.

 

안네의 일기를 읽는 동안 나의 2학년에서 4학년 때까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숨죽이며 살다간 불쌍한 안네가 가여웠지만 매일매일이 공포인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을 기억하고 더 행복을 만들려는 안네가 친구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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