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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 선생 유허지를 다녀와서
작성자 이진섭 등록일 13.02.03 조회수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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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집 가까운 곳에 3.1운동당시 33인의 민족대표 중 대표였던 의암 손생님의 유허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부모님, 동생과 다녀왔다.

손병희 선생님에 대해서는 여름방학에 다녀왔던 독립기념관과 가을에 다녀왔던 단재 신채호 사당에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손병희 선생님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빠랑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서 공부를 하고 갔다.

손병희 선생님 유허지는 1979년 9월 29일 충청북도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손병희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이였다. 또 손병희 선생님은 동학에 입문하여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10만명의 민중을 이끌고 관군과 싸웠으며 1897년에는 천도교 3세 교주가 되고

1919년 기독교, 불교 대표들과 함께 3·1운동을 연계하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옛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상춘원에서 요양하다가 병으로 돌아 가시게 된것을 알게 되었다.

손병희 선생님 유허지에는 선생님의 생가가 있었다. 초가집으로 되어 있었고 아빠게 여쭤보니 선생님께서 정말 사셨던 집이라고 하셨다. 내가 살고 있는 집보다 많이 추워 보여서 선생님은 가난 하셨을것 같았다. 생가에서 나와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의암영당'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손병의 선생님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옆에는 우리나라 태극기와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이 있었다. 선생님의 동상에는 '정의의 채찍을 쥐고 가시밭 헤치신 이여, 자유의 횃불을 들고 이끄신 이여, 겨레의 역사와 함께 길이 사시오리다' 라고 써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자료가 모아져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다. 박물관에는 선생님께서 하신 일, 선생님의 초상화, 살아 계셨을 때 사용하셨던 물건들을 보았다.

손병희 선생님의 유허지를 구경하면서 나는 내가 사는 고장에 유명하고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는 점이 참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오늘 선생님의 유허지를 온 사람은 우리 가족 뿐이였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신 분들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것 같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단재 신채호 사당도 알려주고 의암 손병희 선생 유허지가 우리가 사는 고장 가까운에 곳에 있다고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한 번 가보라고 해야겠다. 나도 부모님과 우리고장 현충시설에 한 번 씩 꼭 가보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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