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홍구공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였고 삼엄한 경계가 겹겹이 처졌다. 단상 위에는 시라카와(白川)
대장과 해군 총사령관인 노무라(野村) 중장, 우에다(植田)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 일본거류민단장 카와바다(河端), 상해총영사
무라이(村井) 등 침략의 원흉들이 도열해 있었다. 오전 11시 40분 경 축하식 중 일본 국가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의사는 수통형 폭탄의
덮개를 벗겨 안전핀을 빼자 앞 사람을 헤치고 나아가 단상위로 폭탄을 투척하셨다.폭탄은 그대로 노무라와 시게미츠의 면전에서 폭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을 내고 식장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카와바다 거류민단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은 다리가 부러졌으며, 시게미츠 공사는 절름발이가 되고 무라이 총영사와 토모노(友野) 거류민단 서기장도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 의사의 이 쾌거는 곧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청년이 해냈다”며 감격해 하고, 종래 무관심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육군중앙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성원하셨다. 또한 한동안 침체일로에 빠져있던 임시정부가 다시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역할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이 의거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리고 1932년 12월19일,23세의 나이로 순국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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