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5학년 6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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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민경 | 등록일 | 17.02.01 | 조회수 | 368 |
유관순은 1902년에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충청 남도 천안군 동면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유관순이 태어난 이년 뒤에 러일 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이겼고 이듬해인 1905년에 우리에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맺은 을사조약이라는것을 하였다. 1910년에는 한일 합방을 하여 저희들 마음대로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1911년에 유관순 아버지는 천안에 흥호학교를 세웠습니다. 우리나라 백성을 깨우치려고 발벗고 나선것입니다. 유관순은 감리교 충청도 교구의 선교사이며 서양 여자인 사 부인의 도움으로 14살에 이화학당에 입학하였습니다. 여자도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생각하였다. 관순은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고종황제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일본인들에게 독살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유관순은 친구 5명을 모아 3월1일 만세운동을 하였다. 조선 총독부에서 학교 휴교령을 내려 유관순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매봉 꼭대기에서 기도를 하고 횃불을 붙였고 음력 3월1일에 아오내 장터 한가운데서 유관순은 군중에게 힘찬연설을 하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유관순 부모님도 총에 맞아 숨졌다. 유관순은 헌병에게 잡혀 끌려갔고 감옥에 갇혀서도 만세를 불렀다. 공주를 거쳐 서울로 옮겨져 재판을 받을 때에도 유관순은 일본인 판사에게 조금도 굽히지 않고 우리나라를 되찾으려고 만세를 불렀는데 그게 왜 죄가 되느냐고 계속 만세를 불렀다. 18세 꽃다운 나이로 숨지고 말았다. 유관순 언니에게 느낀점 : 어린나이에도 굽히지않는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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