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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독서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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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주시경'
작성자 류신형 등록일 17.01.31 조회수 352

주시경은 1876년 11월7일 황해도 봉산 무릉골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주시경 집은 되게 가난하여서 흉년이 들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다.

주시경이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주시경은 큰아버지를 따라 한성으로 갔다.

주시경은 매우 열심히 공부하였다. 주시경이 이진사 댁에서 공부한 지 2년이 되었을 때

주시경은 우리 말 공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시경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글을

써야한다는 마음으로 한글 공부를 시작하였다.

열 아홉살이 되던 해 주시경은 머리를 짧게 깎고 배재 학당에 들어갔다. 배재 학당은

서양식 학교이다. 주시경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글을 공부하였고 서재필과의 인연으로

우리글 연구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우리글로 된 신문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주시경은 독립협회에 들어가 독립신문 교정을 보고 1896년 4월7일  독립신문 창간호가 나왔다.

그즈음 우리나라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 조정의 신하들은 협회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간부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하였다. 주시경은 동료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독립협회의 시련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주시경이 다시 한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독립신문을 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주시경은 학생들에게

국어문법을 가르쳤다. 이때부터 우리글이 한글이라는 이름이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이렇게 한글 사랑에 평생을 바친 주시경은 1914년 급성 체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을 읽고 주시경선생님의 한글 사랑은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독립신문을 내지 못하였지만 포기하지않고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해서 한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주시경 선생님 덕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글이 그때 당시에

학생들이 잘 알게 되고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주시경 선생님을 많이 본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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