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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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손동욱 | 등록일 | 17.02.05 | 조회수 | 349 |
이태영은 1914년 평양북도 윤산군 북진읍 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태영 어머니 께서는 다른사람과는 달리 아들과 딸을 똑같이 대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나중에는 변호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태영은 변호사를 꿈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이태영은 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를 일 등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대학을 가서 공부를 더하고 싶었는데 돈이 모자랐습니다. 이태영은 아이들을 가리치면서 돈을 벌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월급이 너무적어서 아껴써도 돈이 모이질 않았습니다. 대학시험부터 보기로하였는데 가사과 과목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간다음에 수업 과목을 흝어보던 이태영이 눈이 갑자기 빛났습니다. 가사과에도 법학 과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태영은 1936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쁨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뺏었습니다. 일본이 독립운동을 한던 이태영의 신랑인 정일형을 잡아가서 고문을 하였습니다. 1945년 감옥에 있던 정일형이 드디어 풀려났습니다. 1946년, 마침 서울 대학교에서 법과대학에서 여학생을 뽑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렵게 공부를 마친 이태영은 제 1회 고등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2년뒤에 다시 제 2회 고등시험을 한다고 하였습니다.1952년,12월 이태영은 당당하게 시험을 통과 하였습니다. 고등 시험에 통과한 이태영은 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여자라고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변호사 사무실이 열렸다는 소문이 펴졌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여성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돈없고 힘든 여성을 위해 무료로 해주기로하였습니다. 이태영은 자신과 함께할 사람을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도움을 안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문제연구회의 원장에게 갔는데 도움을 주기로하였습니다. 1956녀 8월25일, 드디어 여성문제연구회 한쪽에서 여성법률상담소가 문은 열었습니다. 이태영은 다른 나라에 있는 교민에게도 모금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1975년, 나라 안팎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서 보낸돈으로 드디어 여성 백인 회관을 만들었습니다.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이되어 주었습니다. 1989년 이태영은 가족법을 바꾸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태영은 다시 호주제를 없애려고 하였지만 사라지는 것도 못보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2005년 호주제가 사라지는걸 보면 이런 말을 하였을것입니다. "수백 년 묵은 남녀 차별이 이제야 사라졌군" 예전의 그냥 평범한 여자라면 판사가 되고 싶어도 포기했을텐데 이태영이 그걸하였고, 예전 시대에 여자가 생각을 할수없는 걸 생각하였습니다. 용기와 노력이 멋진 여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할수없는걸 할수 있도록 공부도하고 노력할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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