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김유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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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창희 | 등록일 | 16.08.25 | 조회수 | 132 |
김유신은 신라의 장군으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함께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습니다. 김유신은 가야 김수로왕의 12대 손으로 증조할아버지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입니다. 구해왕은 법흥왕 때 신라에 항복해서 신라의 진골이 되었습지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낭도들을 이끌었습니다. 김유신은 고구려, 백제와 싸워 많은 승리를 거두며 벼슬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김유신은 뒤에 태종 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무척 친해 누이를 김춘추에게 시집보내기도 했습니다. 선덕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구실로 난을 일으킨 상대등 비담을 무찌르고 큰 공을 세웠습니다. 김유신은 선덕 여왕의 뒤를 이은 진덕 여왕이 아들 없이 죽자 김춘추가 왕이 되는 데 크게 힘을 보탰습니다.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이 되자 김유신은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유신은 660년에 5만 군사를 이끌고 당과 함께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킵니다. 이때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습니다.668년에는 또다시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여 멸망시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공이 많다 하여 태대각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유신은 삼국 통일을 하는 데 당의 힘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당이 우리나라를 다 차지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을 몰아내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김유신은 싸움터에서 싸울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웠고, 장군으로서 철저하게 자기를 다스렸습니다. 김유신은 싸움이 계속될 때는 집 앞을 지나쳐도 집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고, 자식인 원술이 싸움에 지고 살아 돌아오자 평생 용서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김유신은 용맹한 장군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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