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중국 체험학습 보고서 - 김우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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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외국어교육부 | 등록일 | 11.09.16 | 조회수 | 97 |
2011 중국 체험학습 보고서 - 김우중 나는 이번 방학 때 중국을 갔다 왔다. 처음으로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이어서 조금 설레였다. 비행기는 타 봤지만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는 타 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을 때 애들이 맛있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나는 너무 맛이 없어서 파인애플만 먹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중국공항은 어떨까? 우리나라 공항보다 넓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항보다 넓은 건지 좁은 건지 잘 모르겠다. 나가는 쪽으로 걸어갔는데 사람들이 양쪽으로 쫙 있었다. 마치 우리를 기다렸던 사람들 같았다. 나가는 문에 가이드가 있었다. 선생님이 소개시켜 드렸다. 그리고 버스를 타려고 가는데 정말 날씨가 더웠다. 하늘은 어두운데 어째서 날씨가 더운지 궁금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차를 탔다. 차가 넓은 거 같은데 차가 조금 더러웠다. 한참을 가서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방은 좋았다. 하지만 화장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선생님들 방엔 컴퓨터도 있어서 정말 부러웠다. 밥을 먹고 아홉시에 선생님들 방에 집합을 했다. 그날은 좀 피곤해서 선생님이 쉰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일정이 많다고 해서 일찍 자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와 기환이는 새벽3시까지 tv를 보다가 잤다. 원래 민종이네 방에서 조금 놀다가 자려고 했는데 민종이네 방에 가보니까 민종이가 벌써 안경을 벗고 이불 덮고 누워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기환이가 그냥 우리방 가서 자자고해서 그냥 나와서 중국말로 나오는 아이스에이지 영화 보다가 잠을 잤다. 아침에 결국은 늦게 일어났다. 하지만 기환이는 일찍 일어나 창민이하고 얘기하고 있었다. 밥을 같이 먹으러 갔다. 아침은 너무 뷔페식이어서 싫었다. 만두는 먹을 만했다. 애들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만두만 다 가져갔다. 중국 학교를 갔는데 중국학교는 정말 넓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서 들어가지도 않았다. 점심을 한국식당에 가서 먹었는데 역시 한국음식이 맛있었다. 숙소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까 이제 첫번째 숙소를 떠나야 되었다. 2번째 숙소에서 짐을 풀고 민종이랑 기환이랑 물을 사러 1층에 내려갔다. 물을 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바로 정전이 됐다. 조금만 늦게 탔으면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을 뻔했다. 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내려갔는데 한 30분정도 지나니까 불이 켜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 하는데 또 정전될까봐 조금 망설였다. 애들 타길래 나도 타서 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가서 맛있는 떡볶이도 먹고 많이 먹었다. 며칠간 형들과 친해졌고 그래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공항에 도착했는데 너무 반가웠다. 가방을 찾고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해 선물도 주고 피곤해서 잤다. 이제는 내가 다녀온 곳을 설명하겠다. 첫날에는 피곤해서 쉬고 2일째에는 광웨러우를 갔었다. 광웨러우는 송나라와 원나라에서 명나라와 청나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대표적 건축물로서 황허러우[黃鶴樓]ㆍ웨양러우[岳陽樓]와 더불어 중국의 3대 명루(名樓)로 꼽힌다. 외형면에서는 송ㆍ원의 누각을 참조하였으나 구조면에서는 당ㆍ송의 건축기법을 그대로 살렸다. 사중첨헐산십자척과가식(四重檐歇山十字脊過街式) 누각으로서 전체 높이가 33m에 이르며, 중국에 현존하는 명나라 누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광웨러우는 돌을 깎아 쌓은 사각형의 높은 축대로 이루어진 기단(基壇)과 건물의 2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부지면적은 1236㎡, 둘레는 34.5m인데 건물이 높이 올라가면서 점차 줄어든다. 건물의 수직 높이는 9m이고, 4개의 아치형 문과 주요 건물로 통하는 계단만 50여 개이다. 주요 건물은 목조 구조로서 모두 4층이고, 네 귀퉁이의 처마는 하늘로 추켜올려져 있으며, 회랑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 전체에는 계단이 112개, 금기둥이 192개, 두공(斗拱)이 200여 개 설치되어 있다. 건물 안은 각종 편액(扁額)과 대련(對聯), 제사(題詞), 조각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모두 정교한 작품들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쓴 '신광종영(神光鐘瑛)'을 새긴 비석과 시를 새긴 작품, 청나라 때의 장원(壯元) 부이점(傅以漸)과 등종악(鄧鐘岳)이 남긴 친필, 현대 문학가 궈모뤄[郭沫若]와 펑쯔카이[豊子愷]의 편액과 대련 등은 진귀한 가치를 지닌다. 1988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타이산을 갔다. 타이산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성스러운 산으로서 중국의 오악(五岳)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산이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역대 제왕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식을 거행했다. 기원전 219년 진나라 시황제(始皇帝)를 시작으로 한나라 무제(武帝)를 포함 많은 제왕들이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치렀다. 특히 한나라 무제는 5번, 청나라 건륭제는 11번이나 봉선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이곳을 신성시하기는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타이산에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고 하여 누구나 타이산 등정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을 정도였다. 때문에 이곳을 오르려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산 정상까지 난 7,412개나 되는 돌계단은 발길에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다. 이처럼 신성시되다 보니 타이산에는 일찍부터 각종 종교 사원과 사당, 누각들이 들어섰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다이먀오다.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올렸던 곳으로, 특히 경내의 티엔황디엔(天皇殿)은 북경 자금성(紫禁城)의 타이허디엔(太和殿),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묘 안의 다청디엔(大成殿)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으로 꼽히는 곳이다. 1009년 송나라 때 처음 건축되었으며 높이 22m, 너비 49m의 크고 화려한 전각이다. 현재의 건물은 17세기에 재건한 것이지만 송나라 때의 거대한 벽화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산 중턱에는 우숭팅(五松亭)이 있다. 진시황이 타이산을 오르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그 아래서 비를 피했다는 소나무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 시황제가 고마움의 표시로 소나무에게 오대부(五大夫) 직위를 주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현재는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때 심은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산 정상에는 비샤시(碧霞祀)라는 사당이 있다. 비샤위안쥔(碧霞元君)이라는 여신을 모신 곳으로 11세기에 창건되었다. 이외에도 타이산에는 이티엔먼(一天門), 중티엔먼(中天門), 난티엔먼(南天門), 다이쭝팡(岱宗坊), 훙먼궁(紅門宮), 완셴러우(萬仙樓) 등의 많은 명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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