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유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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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5.06.12 | 조회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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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유구
이명훈 저자(글) 교유서가 · 2025년 03월 14일
목차
1. 망해촌 2. 손을 떼고 싶습니다 3. 금수저의 탑 4. 키위 5. 회심 6. 서형수의 유배 7. 쇠스랑 자루의 질감 8. 어설픈 농부 9. 이상한 사람이야 10. 돌쇠와 함께 11. 오회연교 12. 소름 13. 땜장이를 뒤따르며 14. 잔혹한 지혜 15. 겨울에서 봄 16. 다시 모인 식구 17. 이중 혁명 18. 둔전 19. 김기백 회장 20. 토갱지병 21. 추자도 22. 일상 23. 전립투 24. 솥과 도마 25. 우리 조선은 바늘 하나 만들지 못한단다 26. 허를 기르는 것이다 27. 김달순 옥사 28. 우보 29. 창자를 끊어내는 아픔들 속에서 30.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 31. 이운(怡雲) 32. 욕망은 더 큰 욕망으로 33. 노비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34. 안과 밖 35. 내일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서유구는 인생이 끝장났다는 느낌에 등골이 시렸다. 숙부의 유배는 자기 자신, 아니 집안 전체가 붕괴할 신호였다. 조정에서 숙부를 단칼에 내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_「1. 망해촌」에서
조상호의 말뜻을 규철도 느끼긴 했다. 서유구는 무미건조하면서도 낯선 구석이 있었다. 가령 그는 『시경』에 주석을 달 만큼 시에도 능숙했다. 그런데도 시를 멀리했다. 늘그막에 쓰긴 했지만, 시적인 풍류완 거리가 멀었다. 브레히트의 시에 나오는 문장 같은 것도 설핏 엿보였다. 19세기 중엽에 선비가 그런 시를 썼다니, 성리학에 절은 조선 시대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있었다. _「2. 손을 떼고 싶습니다」에서
시대만 탓할 게 아니다. 김조순과 사대부들만 못된 게 아니었다. 나도 잘못 살아왔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다시 태어나겠다. 새로운 마음을 세워 시골로 가야겠다. 시골에서 농부로 살아갈 것이다. 농부로 거듭날 것이며 농업에 관한 책, 농서를 쓸 것이다. _「5. 회심」에서
눈이 내렸다. 어린 뽕나무는 흰 눈을 맞고 있었다. 감나무, 봉선화, 분꽃의 마른 가지들도 눈을 맞으며 세밀한 수묵화의 한 장면이 되어갔다. 장독대의 항아리에도, 부추, 파를 심었던 텃밭에도 흰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_「15. 겨울에서 봄」에서
홍경래의 난이 조선을 휩쓰는 동안 서유구는 가슴만 쥐어뜯고 있었을 뿐이었다. 부패에 찌들고 탐욕에 눈이 뻘게진 관리들, 그들에게 삶을 다 뺏겨버리고 피골이 상접해진 백성들……. 그 가엾고 고단한 삶에 단비를 내리며 분노의 포효로 내달리는 말발굽소리가 한편으로 착잡하고 후련하며 무섭기도 했다. 몰반과 신흥 부농, 상인과 광산 노동자, 빈농 들에게……. 그 거칠게 달려나간 뒤의 앞이 보이지 않는 먼지가 뒤덮였다. _「24. 솥과 도마」에서
“그렇지 않다. 무릇 사물을 기르는 데 허(虛)가 있고 나서야 실(實)을 기를 수 있고 그제야 온전한 것이란다. 반드시 허와 실을 함께 길러야만 비로소 완전체라 할 수 있단다. 노자가 말하지 않았느냐? ‘집에 문을 뚫어 밝게 만들려면 그 방이 비어야 방의 쓰임이 있다’라고 한 그 말, 없다는 것은 허(虛)이다. 허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실을 기르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_「26. 허를 기르는 것이다」에서
우보가 물러나자 유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 쓰디쓴 물을 목구멍으로 다시 넘겼다. 땅 문제는 가슴에 박힌 또다른 앙금이었다. 시골로 낙향한 후론 땅 없는 사람들, 특히 땅을 빼앗겨 통곡하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보아왔다. 삼정의 문란 즉 세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바탕인 땅 자체의 문제도 심각했다. 세금과 땅은 깊게 결합하여 조선을 송두리째 말아먹는 괴물이었다. 그 썩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사람들을 황폐시키고 있었다. _「28. 우보」에서
현자들은 이상세계를 꿈꾸고 온 힘을 다해 그 세계가 실현되면 유유히 떠난다는 말이 있지만 유구는 『임원경제지』의 마지막 글자를 써놓고는 홀가분함보다는 오히려 착잡과 허무 속에 있었다. 짙은 공허 속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서조모, 숙부, 형님, 형수님, 우보, 손주들, 조카들……. 먼저 간 핏빛 그리움들이 다녀갔다. _「33. 노비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에서
오비거사 서유구, 그는 허를 통해서 실을 보려고도 했다. 규철은 다시 생각했다. 실을 통해 실을 보려는 사람, 실을 허로 보려는 사람, 허로 허를 보려는 사람으로 나뉘어도 사람에 대한 대강의 그림은 그려질 것 같았다. _「35. 내일」에서
저자(글) 이명훈
1961년 청주 출생.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2000년 〈현대시〉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2003년 장편소설 『꼭두의 사랑』으로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장편소설 『Q』, 단편집 『수평선 여기 있어요』, 산문집 『수저를 떨어뜨려 봐』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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