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기생체’ 매독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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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11.22 | 조회수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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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공부가 업이다 보니 관련 기사는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클릭하는데, 최근 불편한 소식을 접했다. 일본 도쿄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매독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게다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세계적으로 매독 발생이 증가 추세라고 한다. 매독은 선사시대부터 인류를 무던히도 괴롭혀 왔으나, 20세기 중반 이후로 페니실린을 비롯한 항생제를 앞세워 인류가 그 기세를 꺾어버린 성매개감염병이다. 매독균은 이론상으로는 박멸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 세상 곳곳에 은밀하게 퍼져 있다. 성욕이라는 원초적 본능에 올라탄 탓이다. 이번 도쿄 사태 역시 데이팅앱으로 만나는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쉽게 맺어서 일어났다고 한다. 매독, 그 수많은 이름
중세 시절, 이탈리아에서는 매독을 ‘프랑스 병’, 프랑스에서는 반대로 ‘이탈리아 병’으로 불렀다. 이후 전 유럽으로 번지면서 매독은 새로운 이름을 계속 얻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이었고, 영국과 독일에서는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병’으로 통했다. 괴질을 퍼뜨린 책임을 묻는 이런 작명이 그 당시 매독의 전파 경로를 짐작게 한다. 또한, 환자 피부에 생기는 발진과 궤양이 천연두와 비교해 훨씬 더 크다고 해서 ‘큰 천연두(greatpox)’라는 이름도 붙었다. 15세기까지 서양에서 천연두는 그냥 ‘pox’(물집을 뜻하는 중세 영어 ‘pokkes’에서 유래)라고 불렀는데, 매독 유행 이후로는 ‘smallpox’가 되었다. 1530년, 르네상스 시대에 의사, 시인, 점성술사로 활동했던 이탈리아인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1483~1553)가 ‘시필리스 또는 프랑스 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이라는 제목의 라틴어 시를 발표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 시필리스는 태양신 아폴로가 양떼에게 먹일 초목과 샘물을 마르게 하자 홧김에 이제부터는 아폴로가 아니라 왕을 숭배하겠다고 맹세했다. 이에 진노한 아폴로는 저주로 흉측한 병을 내렸는데, 시인은 그 병명을 ‘시필리스’라고 했다. 프라카스토로가 소년의 이름을 병명으로 택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리스어 ‘sys(돼지)’와 ‘philos(사랑함)’를 합친 이름을 라틴어로 옮긴 것이 ‘syphilis’임을 고려하면, 음란한 짓의 결과라고 암시하려는 의도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조어 시필리스는 1700년대 초반부터 널리 쓰이게 됐으며 현대 영어에서 매독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매독(梅毒)’ 한자를 글자 그대로 풀면, ‘매화나무 독’이라는 뜻이다. 매독 환자 피부에 헌데가 양매(소귀나무) 열매와 비슷하다고 해 중국에서 붙은 ‘양매창(楊梅瘡)’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매독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1614년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 지봉(芝峰)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이다. 일종의 백과사전인 이 책에 이런 기록이 있다. “천포창은 정덕년(1521년) 이후에 중국에서 전염되었는데, 중국에서도 이 질병은 예전부터 있지는 않았다. 이 질병은 서양에서 온 것이라 하는데, 훗날 전해진 질병 역시 많다.” 조선에는 천포창 이외에도 면화창, 대마풍, 번화창 등 매독을 지칭하는 이름이 많았다.
특히 당창, 당옴, 광둥창 같은 병명은 이것이 중국에서 들어왔음을 드러낸다. 일본에서도 1512년 교토에서 매독이 유행했을 당시 이를 ‘도가사(당창)’라고 불렀다. 천벌로 여겨졌던 끔찍한 병마를 남 탓으로 돌려 원망하기는 동양이건 서양이건 매한가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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