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균충’과 ‘기균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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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Channie | 등록일 | 14.03.20 | 조회수 | 261 |
최근 미국 하버드대에서 “나도 하버드생이야”(I, too, am Harvard) 운동이 전개되어 미국 대학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학년생 기미코 마쓰다-로렌스는 일부 백인 학생들로부터 “글은 읽을 줄 아느냐?”라는 모욕을 받은 후 이 운동을 시작하였다. 하버드대의 흑인 학생들은 지적 능력이 모자라지만 ‘적극적 차별시정정책’(affirmative action) 덕에 입학했을 것이라는 편견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이 정책은 대학 신입생 선발에서 역사적·사회적으로 소수자·약자였던 계급·계층·집단에 대하여 일정한 우대를 하는 것으로 1961년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실시되었고, 대학의 창의성과 다양성 강화 및 사회통합 신장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백인 상류층 등 주류집단 소속 학생이나 학부모 중 일부는 ‘역차별’이라며 반발했다. 과거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 정책이 없었으면 오바마는 컬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대학학력고사(SAT) 성적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의 골간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 정책으로 뽑힌 학생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기회 안에서 최고를 이룬 학생들이었고, 졸업 후 각 분야의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마쓰다-로렌스가 겪은 일과 유사한 사건이 서울대에서도 발생하였다. 작년 서울대의 학생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지역·기회균형선발’ 출신 학생을 비하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지역·기회균형선발은 농어촌 등 서울 외의 지역 고교, 저소득 가구, 탈북가정 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면서도 우수한 성과를 거둔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문제의 글을 올린 학생은 동료 친구를 ‘지균충(蟲)’ ‘기균충(蟲)’으로 부르며 비하했다. 서울대 교수로서 부끄럽다. 동료들의 사회·경제적 환경과 대학의 역할 중 하나인 사회통합을 무시하고 입학 시 성적만으로 동료를 평가하는 태도는 ‘반(反)지성’ 그 자체다. 이 글을 올린 학생이 비(非)서울대 학생이나 고교졸업자는 어떻게 취급할까 생각하니 더 참담해졌다. 고교 졸업 시 성적우수자들의 재능과 노력은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하지만, 학문 연구와 지도자 육성이라는 역할을 갖는 대학은 학생 선발 시 성적 외에 다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학문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계급, 계층, 집단의 경험, 이익, 꿈,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학문이 될 리 없다. 대학이 성적우수자들만의 ‘동종교배’ 집단으로 변질될 때 그 대학 출신이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지도자로 성장할 리 없다. 대학은 계층상승을 보장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큰 공부’를 통하여 ‘큰 사람’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큰 사람’이 되려면 ‘너른 가슴’과 ‘따뜻한 가슴’이 필수적이다. 대학이 고교 졸업 시 우수성적을 뽐내는 데 급급한 학생들이 모여 ‘실력’보다는 ‘연고’를 쌓는 장소로 전락한다면 재앙 중의 재앙이다. 미국 최고 명문 사립대 중의 하나인 애머스트 대학의 앤서니 마르크스 총장은 SAT 과외를 받는 부유층 학생과 그 시간에 ‘세븐 일레븐’에서 일해야 하는 학생을 같은 기준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명문대)는 실력과 기회와 재능에 기초한 체제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로부터 3분의 2의 학생이 상위 4분위에서 오고 오직 5%의 학생만 하위 4분위에서 온다면, 우리는 확장되고 있는 경제적 격차를 해결하는 방책의 일부가 아니라 경제적 격차라는 문제의 일부이다.” 지역·기회균형선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역·기회균형선발 학생의 환경에 처해있었다면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었겠느냐고, 지역·기회균형선발 학생이 당신의 환경에서 살았더라면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었겠느냐고. 그리고 지역·기회균형선발로 선발된 학생의 ‘행운’이 부러우면 현재 누리고 있는 환경을 지역·기회균형선발 학생의 환경과 교환할 의향이 있느냐고. 지역·기회균형선발로 뽑힌 학생들의 입학 시기 성적은 특목고나 강남 명문고 출신이 많은 수시·특기선발 학생의 성적보다 못하다. 그러나 전자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고려할 때 전자의 성적은 충분히 우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자의 졸업 시 성적은 후자의 졸업 시 성적보다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역·기회균형선발 출신 학생들의 맹활약을 기대하며 또한 믿는다. 경향신문 2014-03-18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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