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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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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이혈)1
작성자 신혜인 등록일 17.11.28 조회수 153
 성종은 원래 왕위를 이을 세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예종이 갑자기 죽엇을 때 세자였던 제안 대군은 3살로 너무 어려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왕위계승자를 찾다,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이혈이 왕으로 선택되었다. 알고 보니 이는 조정의 가장 큰 권력자인 한명회가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희 왕후와 함께 결정한 일이었다.
 한명회가 정희 왕후의 의도는 성종이 왕위에 오르기 무섭게 곧 드러났다. 세자가 너무 어려 대신 왕위에 오른 성종이지만, 당시 그의 나이도 13살에 불과했다. 그래서 성종 대신 정희 왕후가 수렴청정을 맡게 됐다. 그것도 무려 7년 동안이나 말이다. 하지만 이 7년 동안 실제로 나라를 다스린건 한명회였다. 결국 그들은 조선을 마음껏 주므르기 위해, 성종이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78년의 시간은 성종에게 제대로 된 왕이 될 준비 기간이 되어 주기도 했다.
 성종은 수렴청정 기간 동안, 경연을 부활시켰다. 경연은 신하들과 왕이 토론하며 공부하는 자리로, 세조 때는 신하들의 훈계가 탐탁지 않아 없애버렸지만, 성종은 경연만큼 왕의 자질을 키우기 좋은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게는 하루 3번까지 매일 빠지지 않고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총 9,229회나 경연에 참가했을 정도다.
 많은 이들이 성종의 최대 업적이라고 알고 있는 <경국대전>의 완성은 사실 그 혼자 이룬 것이 아니었다. 세조 때부터 20년 가까이 준비한 나라의 큰 사업이었다. 성종 대에 이르러 <경국대전>을 완성할 수 있었던건 그로서도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즉위 이후 바로 반포한 <경국대전>에는 보완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15년간의 추가 조사와 보충을 거둡해 1485년에서야 더욱 완벽한 <경국대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드디어 7년 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제대로 된 왕 노릇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조정은 세조 대부터 이어져온 한명회, 신숙주 등의 대신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성종은 그만의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바록, 지방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사람들을 관리로 등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사림들은 낮은 관직부터 차근차근 성종과 함께 성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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