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이유)-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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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신혜인 | 등록일 | 17.11.04 | 조회수 | 28 |
세조를 불편하게 했던 건 그에게 반대하던 신하들뿐만이 아니었다. 왕이 된 이후 잠이 들면,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꿈에서 현덕왕후는 아들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한 그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 침을 맞은 자리마다 종기가 돋았다고 한다. 단지 악몽일 뿐은 아니라 실제로 종기가 자라고 있었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에 용하다는 의원을 모두 불러 들이고, 좋다는 약을 안 써 본 게 없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화가난 세조는 현덕왕후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다시 죽이기까지 했지만, 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몸이 아프다고, 나랏일에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북족의 오랑캐들이 끊임없이 조선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무니다. 그래서 세조는 믿을 만한 신하, 신숙주에게 오랑캐 소탕을 명했다. 그러길 7년. 평안도, 강원도, 황해도 등 조선의 북쪽 지역에서 오랑캐들을 소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그곳이 조선의 땅임을 확실히 해 두었다. 또한 북쪽 국경지대에는 항상 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둔전을 두고, 북쪽 국경을 지키는 군사들의 군량미가 부족함이 없게했다. 세조 나름대로는 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카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것이 끝끝내 마음에 짐이 되었다. 날로 심해지는 피부병은 그에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저주 같았다. 그래서 세조는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고, 그의 마음이 쉴 곳을 찾아 불교에 점점 빠져들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책으로 정리한 편찬하고, 원각사를 건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대산의 문수보살상까지 찾아가 100일 기도를 하며, 그의 죄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기원했다. 세조의 몸과 마음이 약해져가던 것과는 별개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 위한 집념만큼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 일환으로 사대부들의 경제 기반을 빼앗아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세조는 '직전법'을 실시했다. 이전에는 현직관리는 물론 관직에서 물러난 관리들에게까지 모두 과전을 지급하던 걸, 직전법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자, 벼슬을 관둔 사대부들은 경제 기반을 잃어 점점 세력이 약해져 갔고, 그의 뜻을 받드는 현직 신하들만 경제적 지원을 받아, 세조의 왕권은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세조의 왕권 강화에 반대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시애였다. 이시애는 북쪽 국경 지방인 함길도의 귀족으로 세조가 이 지역에 직접 관리를 파견하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것이다. 진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이시애의 난은 진압됐고, 그 결과 세조의 중앙집권 정책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이시애의 난 때 지방 귀족들이 모여 결속을 다졌던 '유향소'를 없앤 것은 물론, 반란 세력의 중심지인 함길도는 좌우로 나누고, 각각 관리를 파견해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않게 조치했다. 조선의 중앙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세조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종기로 시작된 피부병은 온 몸이 썩어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뒤늦게 자신의 과거를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게다가 불행은 그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첫째 아들 의경세자가 20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고, 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둘째 예종은 왕이 된 지 13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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