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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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지영 | 등록일 | 17.12.01 | 조회수 | 29 |
요즘 ‘드론 부모’, ‘잔디 깎기 부모’,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들이 종종 쓰인다. 이 단어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이 신조어의 의미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잉보호를 의미한다. 사전을 통해 찾아본 과잉보호는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일이다. 과잉보호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과잉보호로 인해, 자녀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과잉보호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책 427km의 용기 87쪽을 보면 ‘등산은 마크의 비밀스러운 취미가 되었다. 마크는 그런 취미를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마크는 부모님이 과잉보호를 한다며 투덜거렸다.’라고 나와 있다. 마크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부모님은 모르고, 또 마크가 부모에게 알려 줄 일도 없다. 왜냐하면 마크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마크의 부모님도 다른 부모님들처럼 자녀를 매일 걱정하며,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마크를 보살펴 왔다. 매일 옆에서 도와주고 자녀를 위해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은 자녀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 의해 자녀의 삶이 조종당하는 것이다. 둘째, 지난 5월 27일 충북일보를 보면, 충청북도 한 대학총장이 자녀의 생일파티를 위해 공원에 에어바운스와 이동식 수영장, 출장 뷔페까지 동원해 시민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사랑하는 자식의 생일을 위해, 자식이 원하는 생일 파티를 연다는 것이 무슨 비난을 받을 것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생일파티에는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문제가 된다. 자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자식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도 과잉보호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자기 자식만이 최고인줄 알고 자식을 과잉보호는 대학총장은 많은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심어 줄 수 밖에 없다. 셋째, 더불어 민주당 정청래의 SNS를 보면, “정유라, 부모의 과잉보호와 과욕의 결정체”라고 나와 있다. 두 번째 대학 총장의 사례가 마을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거리감을 심어 주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친 사례이다. 정유라는 화실 속에 영양소를 잘 받고 잘 자란 화초이다. 세상에 물들지 않고, 부모의 과잉보호 아래 잘 길들여진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로 인해 입시에 떨어진 사람에 대한 죄책감도 없고, 성인이 되어서는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모른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다 해주었기 때문에, 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수난을 겪고 더 성숙해 지는 과정을 부모님이 다 해주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과잉보호의 영향은 이처럼 사람의 배경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건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의 적절한 보호는 당연히 존재해야하고 그 부모의 사랑 속에 올바른 인격을 갖게 된다. 전통적인 효를 중시하던 과거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지켜야 할 예법이 있었다. 부모는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자녀를 낳아 부모가 되었다면 최선을 다해 자녀를 올바른 길로 가게 이끌어야 한다. 지금은 몇몇 부모들처럼 과잉보호는 좋지 않다. 그 대상에게만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라져야 할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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