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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가르치며 공부한 기억은 24시간 지나도 남아
작성자 양재숙 등록일 12.04.04 조회수 255

또래 가르치며 공부한 기억은 24시간 지나도 남아

한국협동학습센터 소장 구현고 김현섭 교사
조별→협동→협력학습 개념구분도 필요해
배움은 학생-학생 ‘관계’에서 일어나기도

학교 현장에서 또래학습이 주목받는다. 친구들끼리 모르는 걸 가르쳐주고 배우는 문화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 아니다. 다만 또래를 가르치고, 또래끼리 배우는 일을 ‘또래학습’이라는 용어로 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또래학습이란 뭘까? 한국협동학습센터 소장 김현섭(사진) 교사(구현고)를 만나 또래학습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요즘 들어 또래학습을 시도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또래학습이란 뭔가?

“말 그대로 또래끼리 수업하는 걸 말한다. 크게는 수업 안과 수업 밖 활동으로 나눠볼 수 있다. 수업 시간에서는 기존에 하던 조별학습, 최근에 많이 하는 협동학습 등 또래 가르치기를 지향하는 교수전략이 모두 또래학습에 들어간다. 수업 밖 활동으로는 학습동아리, 멘토·멘티제 등을 또래학습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또래학습이라는 개념이 교육 현장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또래를 가르친다는 개념은 과거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교육학에서 이론적으로 정립을 하고, 또래학습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또래학습의 하위 개념인 협동학습과 협력학습은 뿌리나 흐름이 조금 다르다. 협동학습은 미국에서 교수학습 방법론으로 나온 개념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구가 됐고, 1990년도에 현장에 소개됐다.

협력학습은 영국의 구성주의 학자들이 교육철학적인 뜻에서 교실을 바꿔보자는 의미로 만든 개념이다.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 들어온 건 1990년 수원중앙기독초등학교가 설립한 뒤다. 그 뒤 교사들의 운동으로 확산이 되고, 2000년대 이후 한국협동학습연구회가 나오면서 연구회 중심으로 알려졌다.

협력학습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최근의 일이다.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하면서 협력학습을 시도했다. 그리고 최근에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를 설립하면서 더욱 알려지고 있다. 협동학습과 협력학습은 1990년대 들어서 만나게 되면서 지금은 그 의미가 혼용돼 쓰이고 있다.”

협동학습, 협력학습은 어떻게 다른 건가?

“또래학습에도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조별학습이다. 조별학습에서는 조원들이 협동을 안 해도 과제를 완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별토의를 했다고 치자. 참여를 하는 학생이 있고, 안 하는 학생도 있다. 그래도 점수는 나온다. 무임승차하는 친구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 단계가 협동학습이다. 협동학습에서는 과정에도 협동의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네 명의 학생이 직소모형(소집단의 구성원들이 반드시 과제의 일부를 책임지고 분담해서 집단 전체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공부 모형)에 참여한다고 치자. 협동학습에서는 학생들 넷이 각자 공부한 걸 다른 친구한테 설명해줘야 한다. 테스트를 할 때는 내가 공부한 데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다. 나머지 세 친구가 나한테 가르쳐준 데서 테스트를 한다. 내가 아는 걸 얼마나 잘 설명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머지 친구들 이야기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들었는지도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때 교사는 적절한 보상 장치를 주게 된다. 협동학습으로 넘어가면 조별학습 환경에서 무임승차를 하던 친구들이 나오지 않는다. 안 하면 안 되는 강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 발전된 다음 형태가 협력학습이다. 협력학습은 어떤 보상체계가 없이도 학생들이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만나서 공부하고 협력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협력학습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학습동아리 만들고 운영해’ 이렇게 말하면 참여하는 친구는 하고, 노는 친구는 논다. 조별학습에서 협동학습을 거쳐 협력학습으로 진화한다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실패하기 쉽다.”

또래학습의 효과는 뭔가?

“인지적인 면에서는 복습의 효과가 탁월하다. 인지이론을 보면 우리가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때 머릿속에 들어온 지식과 우리 안에 있던 각종 경험들이 정보로 구조화가 되어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이 된다. 어떤 설명을 듣기만 할 때 24시간이 지나면 약 10% 기억나지만 들은 걸 누군가에게 가르치면 24시간이 지나도 90%가량 기억에 남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서적, 사회적 효과도 크다. 또래학습은 학습동아리다. 이런 동아리 활동을 하려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사회성이 발달하게 된다. 소속감도 생기고 다른 사람과 함께 뭔가를 이뤄나가는 즐거움도 알게 된다. 배움은 ‘관계’에서 일어난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학생과 학생 간의 관계에서 실현된다.”

또래학습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오해가 있을 것 같다.

“아까 협동학습, 협력학습의 차이점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단계별로 접근해야 또래학습도 제대로 실현이 되는데 그걸 잘 모른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상황이나 수준 등을 잘 모른 채로 어떤 보상을 걸어두고 또래학습을 하다 보면 자칫 협동 퍼포먼스가 되기 쉽다. 보상이 사라지면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초·중·고등학교 학교급에 따라 또래학습에 대한 접근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보통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협동학습이 필요하다.”

또래학습이 현장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걱정스러운 점은 없나?

“교사들은 또래학습에 대한 경험이 없다. 대부분이 일제고사를 치르고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는 환경에서 자랐다. 연수 하나 듣는다고 하루아침에 시각이 달라지기는 어렵다. 교사들이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또래학습의 구체적인 사례와 모형 등을 공유하면 좋겠다.

나도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 학습동아리를 지도해봤는데 조별학습 방식으로 지도를 해보니까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이 나왔다. 그러다가 협력학습 방식으로 방임을 하니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해하는 아이들이 나왔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고 협동학습에서 협력학습으로 이어지도록 단계별 또래학습 지도를 했더니 변화가 보였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또래학습 지도를 받은 학생들은 입시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또래학습을 한 과정과 결과는 입학사정관제 포트폴리오 등에 중요한 스펙거리가 된다.

제도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나오면서 또래학습 동아리 등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단위학교 차원에서는 또래학습 공간을 마련해주거나 생활기록부에 이런 활동상을 정리해주는 배려도 필요하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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