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혼자서
어떤 책을 읽었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보다
친구들 앞에서
얼만큼 어떻게
구술 발표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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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성우 | 등록일 | 20.04.21 | 조회수 | 73 |
“학교가 성공한 것은 단편적인 지식 주입이고, 실패한 것은 인격의 도야이다.” 이 말은 1963년 교육과정 머리말 말미에 나오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때도 교육과정 목표를 제시할 때는 ‘일상생활에서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하고 유익한 지식(知識)’을 강조하면서 교과서 중심과 강의 위주의 학습을 지양하라고 명시하였다. 60년이 지났어도 지금과 다르지 않다. 현재의 교육과정에도 지식과 문제해결 역량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다만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와 새롭게 제시된 목표를 교사들에게 알리려는 교육청의 수고스러움이 더해지면서 지식의 중요성이 밀리고 있다.
창의성에 관련된 두 가지 문장을 보자. 하나는 국가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사회에 대비하는 핵심역량이다. 전자는 ‘기초 능력의 바탕 위에 다양한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으로 되어 있고, 후자는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 사고 역량’으로 되어 있다. 창의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폭넓은 기초 지식과 전문적인 지식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 경험, 기술이 융합되지 않으면 창의적 역량을 기를 수가 없다고 강조까지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인가 창의성인가? 아쉽게도 학교는 후자를 선택한다. 바로 창의성을 직접 가르칠 수 있다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 채 일상생활의 문제를 중심으로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젝트가 아주 쉽게 교실에서 도입된다. 강의식이 바로 주입식이라는 논리가 더욱 강화되었으며 학생들이 교실에서 참여하는 모습만 보이면 교육이 추구하는 근본에 도달한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창의성을 강조한 것은 2009개정이나 2015개정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시절 1963년 제2차 교육과정에서도 ‘민주적인 생활’, ‘과학적 생활’, ‘건전한 생활’, ‘심미적 생활’, ‘자주적인 생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 부분을 강조한다. 전두환 시절 1981년 제4차에서는 교육과정에서 추구해야할 네 가지 인간상을 제시한다. 이때부터 인간상은, 홍익인간의 이념과 목적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이 추구해야 할 것으로 첫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와 제9조(학교교육), 그리고 현재의 교육과정에 걸쳐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항이다.
차안(此岸)의 학교가 제시하는 피안(彼岸)의 비전은, 언제인지 모를 먼 미래에 구현될 것이라 가정하고 작성된다. 그리고 개학을 맞는다. 교육기본법 제9조 2항에 제시된 전인적(全人的) 교육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어떤 험난한 물길이 있는지는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학생의 시계는 입학과 졸업이지만, 학교 시계는 시업과 종업이다. 자기 주도 학습이나 창의성과 같은 역량을 지금 당장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그 능력의 껍데기라도 흉내 내게 된다. 대규모로 운집한 모습의 사진과 영상을 누적시켜 놓으면 된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성교육 내지 전인교육을 강조할수록 학생들의 내면에 무엇이 자리 잡았는지는 덜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의적 역량도 기초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등학교니까 기본 습관과 기초 학력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 궁여지책으로 시행되는 온라인학습은 이미 10년 전에 사이버 가정학습이라는 형태로 시행되었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개학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 사이버 가정학습의 어두운 면을 이미 봤기 때문이다. 4차 혁명이 만개되지 않는 시점에서는 대면교육만이 희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빨리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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