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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가 오시는 날
작성자 주형식 등록일 14.09.24 조회수 363

 

    5. 비가 오시는 날

 

    비가 오시는 날이다.

    누구는 회색 빛 분위기가 되기에 싫다고 한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괜히 기분이 좋다.

   문득, 어릴 적 고향집 너른 흙 마당에서 버둥거리는 미꾸라지가 생각나고, 동글고 둥근 원 모양의 파장을 혼자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껴안고 바라보던 어린 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 사물놀이할 때 바쁘게 휘감기는 장고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이지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것도 아주 큰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우리 집 마당으로 덜컥 내려 앉는 줄 알았다. 그런 날은 잡은 미꾸라지를 큰 호박 잎사귀에 얹어서 아궁이 잔불로 익혀먹기도 하고, 밥할 때 쪄서 먹기고 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 좋았다.

   하지만 나중에 도시로 나가서 학교 다닐 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기분이 상했다. 하늘이 우리 집에만 떨궈 주는게 아니라, 집 옆 작은 개울에서 물줄기를 따라 힘차게 올라오는 것이로구나, 를 알고는 슬픈 마음이었다.

   누구나 잡기만 하면 돈 주고 사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세상에 미꾸라지로 태어나 힘차게 살아보려는 것을 가로막고 잡은 것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이른 바강제라는 개념이 어렴풋이나마 생각난 것이다. 그러자 어두운 마음이 밀려 왔다. 그래서 미꾸라지 음식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휩쓸려가지 않는 한 먼저미꾸리 집에 가자고 하지를 않는다.

 

   빗방울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마당, 들판이나 도로의 작거나 큰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동글거나 둥근 원을 만들고, 겹치고, 퍼지고 사라진다. 비가 그칠 때까지 수 없이 반복한다. 주전자에서 떨어지는 방울은 안 그런데 왜 빗방울은 저럴까, 과학적으로 알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돌고 도는 인생, 작은 것이 커지는 과정, 어느 정도 퍼지면 사라질 줄 알고, 다른 원을 내 안에 내 원을 다른 원 안으로 서로 감싸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빗방울 보는 것을 좋아한다. 성숙과 섬김과 섭리를 아우르는 빗방울의 모습을 보며 아둥바둥 자기 욕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내 모습을 성찰한다. 서로 섬김과 디딤돌이 아니라 뺏음과 거침돌이 가득한 우리 사회를 속량한다. 웅덩이에 고여서 퍼져가는 것을 보며 나도 저런 원()이 되어야지 원()을 한다.

 

   우리 현도중학교에 사물놀이 동아리가 있다. 청주시 현도면 구룡산(대청댐 식당가 부근) 장승축제(2014.9.20.,)의 식전행사에서 우렁차고 세련된 연주를 해주었다.

   인터넷을 보니 사물놀이는 금부악기(괭가리, )와 혁부악기(장고, )로 이루어졌는데 신기하게도 각 부마다 한 악기(괭가리, 장고)는 가락을 잘게 나누고, 다른 하나(, )는 잘게 나뉘어진 가락들을 폭넓게 감싸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두 개의 금부악기는 그들끼리, 혁부악기는 또 그들끼리 서로 리드하고 따라가 주는 조화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음양의 조화 원리라고도 한다.

   이 네 가지 악기의 역할(구실)을 보면 쇠는 쨍쨍거리는 잔가락으로 리듬을 이끌어가고, 징은 지속적인 울림으로 쇠의 앙칼지고 모난 부분을 다듬고 감싸준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잦게 몰아가는 장고는 쇠와 가락을 밀고 당기는데, 북이 둥둥거리며 장고를 돕는다.

   때로는 사물을 자연과 비교하여 자연성의 원리를 주장한다. 즉 쇠를 번개, 징을 바람, 장고를 비, 북을 구름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나는 장고를 좋아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출근하면서 장고 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차 덮개를 때리는 빗소리가 장고 소리 그 아니던가. 물이 쇠를 때리면서 아니 서로 부딪치며 조화를 이루는(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연주를 듣는다. 약하고 강하게 쉬었다 이어지고 크게 작게 자연물()과 인공물()의 이중주를 듣는다.

 

   비가 오는 날은 모난 네모보다 원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지, 선한 영향력을 가까이 멀리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지, 악기처럼 나와 남의 감성을 돋아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는 날이다. 스승같은 목소리로 비가 내리는 날이다. 그래서 비는 오는게 아니라 오시는 것이다.

   비가 오시는 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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