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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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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행사
작성자 *** 등록일 09.03.16 조회수 327
 

삼일절(3월 1일)


1. 의의

  한국이 1910년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아 강제로 합병 당한 이후, 그   들의 무서운 식민정책과  무단통치 밑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영도 아래에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독립선언서를 세계만방에 반포하고 전국의 남녀노소가 일제 관헌의  총칼 앞에 맨주먹으로 총궐기하여 자주독립을 부르짖었다.


  3.1운동은 실로 독립정신의 정화요, 항일투쟁의 표본으로서 민족의 기개를 온 세계에 과시하였고 , 이 정신이 겨레의 가슴속에 계승되어 해방을 맞고 우리의 독립을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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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유래


당시의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의 대 원칙을 외치게 되자, 이에 호응하여 한국 민족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국 동포가 총궐기하여 정정당당하게 자주독립의 주권을 회복하여야겠다고 일어서게 되었다.


당시 일본측은 한국 민족의 독립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첫째는 국내의 매국노와 친일파들의 서명날인으로 총독 정치 찬양문서를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  둘째는 구황실 세자 영친왕을 볼모로 데려다 두었다가 그들 황족과 강제 결혼시키자는 것이었는데 고종황제가 거절하자 잔인 무도하게도 기미년 1월 22일 고종황제를 시해하였다.


  이에 지금까지 쌓였던 전국 동포의 울분과 통한이 일시 폭발하게 되었고, 고종황제 국장일(3월 3일) 을 위해 모여든 군중들과 더불어 민족대표 33인이 서명날인한 독립선언서가 파고다공원에서 우렁차게 반포되고, 남녀학생을 선두로 한 수십만 군중의 시위행진은 온 장안을, 나아가 온 나라를 휩쓸게 되었다.


 8․15 해방이 되자 뜻 깊은 이 날을 되새기기 위하여 해마다 3월 1일에 기념행사를 가져오다 1949년 10월 1일에 법률 제53호로서 국경일로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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