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백제의 건국과 발전>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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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하늘 | 등록일 | 16.01.28 | 조회수 | 162 |
백제는 처음엔 힘이 약하여 북으로는 낙랑과 말갈의 침략을 자주 받았고,남으로는 마한 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어요. 그러나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 자리를 잡은 이후 한강 유역의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미추홀의 비류 세력을 통합하고,마한의 여러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한층 강력한 연맹 왕국으로 발전해 나갔어요. 특히 한강 유역은 일찍부터 철기 문화와 농경 문화가 크게 발전한 곳이었기 때문에 나라의 발전이 비교적 빨랐어요. 백제에서는 왕족인 부여씨와 8개의 귀족 가문이 중심이 되어 정치를 주도했어요. 백제는 기원 후 1세기 중엽에는 마한을 공격하고,3세기 중엽인 고이왕 때에는 위나라 지배 아래의 낙랑군과 대방군 및 말갈족을 북으로 밀어내면서 영토를 넓히고,국가 체제를 새롭게 정비했어요. 먼저, 중앙의 왕 아래에 6좌평을 비롯한 16등급의 관리를 두어 나랏일을 나누어 맡아보게 했어요. 6좌평의 명칭과 직무를 보면 내신 좌평은 왕명 전달,내두 좌평은 재무 담당,내법 좌평은 의식 업무,의사 좌평은 왕궁 호위,조정 좌평은 형벌과 재판,병관 좌평은 군사 업무를 각각 맡아보았어요. 그리고 제18대 전지왕 때에는 좌평의 최고 책임자인 상좌평을 두었어요. 또16등급에 따른 관복을 제정하고 지방 족장들은 차등을 두어 중앙 관료로 받아들임으로써 정비된 고대 왕국의 모습을 갖추었어요. 뒷날,고이왕을 백제의 시조로 추대한 이유도 이러한 그의 훌륭한 업적 때문일 거예요. 그의 업적은 고구려의 소수림 왕의 비교될 수 있으나,시기적으로는 그보다의 성장이 빨랐던 것이였지요. 이처럼 고이왕 때 다져진 국가 체제를 바탕으로 하여 대대적인 대외 정복 사업을 버린 것은 4세기 후반의 근초고왕 때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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