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후삼국 통일과 고려 건국>을 읽고 |
|||||
---|---|---|---|---|---|
작성자 | 주하늘 | 등록일 | 16.01.28 | 조회수 | 160 |
통일 후 번영을 계속하던 신라는 8세기 후반부터 귀족들의 반란과 왕위 다툼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서 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귀족 세력 내부의 분열과 갈등으로 신라 사회는 점점 혼란에 빠져들었어요. 이와 같은 정치적 혼란은 혜공왕 때부터 시작되었고,진골 귀족이 가담한 싸움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지요. 선덕왕 때부터 무열왕계가 끊어지고, 방계 귀족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어요. 이때부터 신라에서는 왕위 다툼이 심해져 150여 년 동안에 20여 명의 왕이 바뀌는 큰 혼란을 겪으면서 왕권은 크게 약화되었어요. 헌덕왕 때 일어난 '김헌창의 난' 이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이후 귀족들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어요. 격심한 왕의 다툼은 신라의 전통적 신분 질서인 골품제를 뒤흔들어 사회의 혼란을 불러왔지요. 진골 중심의 사회 체제에 특히 반발을 보인 계층은 6두품 세력이었는데, 이들은 승진에제한을 받았기때문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어요. 이들은 국학에 들어가 배우기도 하고, 당나라의 모순을 앞장서서 비판했어요.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정치 감각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했어요.
송악의 호족인 왕건은 해상 세력을 배경으로 성장했으며,일찍부터 궁예 밑에서 활약 했어요. 그는 수군을 이끌고 나주 지역을 공략하여 후백제를 뒤에서 견제하는 역할을 했어요. 이 전공으로 궁예의 신임을 얻어 시중의 자리에까지 올랐어요. 이때 궁예는 자신을 미륵으로 자처하면서 포악한 정치를 일삼다가 민심을 잃고 있었어요. 이에 왕건은 신임하는 장수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새 왕조를 일으켜 세웠어요. 왕건은 국호를 고려,연호를 천수라 하고,수도를 철원에서 송악으로 옮겼어요..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후백제를 공격하는 한편,신라에 대해서는 화친 정책을 썼어요. 처음에는 전세가 고려에 불리했으나,차츰 세력을 만회하면서 후백제군을 무찔러 승리를 굳혔어요. 고려의 왕건은 견훤이나 궁예와는 달리 확고한 토착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또 군대의 규율이 엄격하여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으므로 곳곳에서 환영을 받았어요. 이를 바탕으로 다른 호족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넓힐 수 있었지요.
|
이전글 | 과학<빛과 소리>를 읽고 |
---|---|
다음글 | 역사<백제의 건국과 발전>을 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