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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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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작성자 김민수 등록일 10.05.03 조회수 215

나는 장영실이라는 책을 읽었다. 장영실의 아버지는 원나라 유민의 소주,항주 사람이고 어머니는 조선 동래현 기생이었는데 기술이 뛰어나 태종이 아끼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전물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산 장씨 종친회에서는 출생은 1390년 공양왕 2년 경이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귀화한 장서 아산 장씨 시조의 8세손으로 고려 말 전서였으면 어머니는 동래현 관기로,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혼란기에 어머니와 장영실은 조선 관노로 전락하였다고 주장한다. 장영실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취미와 제주를 가졌으며 동래현 관청에서 일하는 노비가 되었고 그의 훌륭한 재주를 세종대왕이 인정하여 장영실을 발탁하였다. 세종은 장영실을 1421년 세종 4년 윤사웅, 최천형 등과 함께 중국에 보내어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도록 했다. 귀국 후 장영실 나이 약 34세 때인 1423년 세종 5년에 천문기기를 제작한 공을 인정 받아 면천되었고 다시 대신들의 의논을 거쳐 상의원 별좌에 임명되었다. 그후 , 세종 대왕의 명에 따라 1432년부터 1438년까지 이천의 책임 하여 천문 기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인 자격루 일명(부루각루,1434년)와 옥루(일명 흠경각루,1438년)를 만들어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이따 제작된 올루는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시간, 계절을 알 수 있고 천체의 시간, 움직임도 관측할 수 있는 장치로 흠경각을 새로 지어 그 안에 설치했다. 이 때 만들어진 천문 기구에는 천문 관측을 위한 기본 기기인 대간의 소간의를 비롯하여 휴대용해시계인 현주일구,천평일구,방향을 가리키는 경남일구, 혜정교와 종묘 앞에도 설치한 공주시계인 앙부일구, 밤낮으로 시간을 알리는 일성정시의 규표 등이 있다.이러한 공으로1433년 세종 15년에는 호군의 관직을 더하였다. 1434년세종16년에는 구리로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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