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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편지 4 ( 명성황후 그 비극의 죽음 ) 6학년 1반 곽은별
작성자 한상경 등록일 09.06.25 조회수 116

이 책을 읽은 계기는 6학년 사회 때 을미사변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볼려고 도서실에서 한국사 편지 4를 찾아읽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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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0월 8일 ( 음력 8월 20일) 새벽 5시 30분경 경복궁의 정문인 강화문에서 갑자기

총소리가울렸어 일본인들이 침입해온것이지 궁궐을 지키던 훈련대연대장 홍계훈이 총에 맞고 그자리에서 죽었어

그러고 나서 일본인들은 왕비의 거처인 곤영합을 향해 달려갔어 곤녕합을 향해 달려갔어, 곤녕합은 경복궁의 맨 앞쪽 깊숙한곳에 자리잡고있었단다.

곤녕합 옆에는 옥호루라는 건물이 딸려있었어 옥호루에 뛰어든 일본인들은 궁녀 궁내부대신 이경직도 달려왔어

일본인 몇명이 쳐들어왔고 이경직이 왕비앞을 가로막았지만 일본인의 칼에 맞고 살해되었단다.

공포에 질린 왕비는 단지 방문객일뿐이라고 말하고 다른궁녀들도 같은말을하자 한 일본인이 왕비를 내동댕이치고 구둣발로 가슴을 세번 짓밟은 다음 칼로찔럿다 . 이때 궁녀들도 동시에 살해되었다

궁녀들은 왕비와 비슷하기때문에 왕비 살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고한다 .

이것이 바로 명셩황후 시해사건이란다 . 을미년에 일어난 변고란뜻으로 을미사변이라고도해

지금 이 내용은 명성황후의 최후를 상세하게 묘사하고있어 tV드라마에 나오는 시해와 많이 다르지?

드라마에 명성황후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어 아마 작가는 명성황후라면 그정도 당당함을 갖추고있을거라 생각했나봐

그리고 우리는 명성황후의 얼굴도 모르고있어 지금까지 명성황후라고 알려진사진은 다른 궁녀이며

1910년 샌프라시스코에서 발간된 이승만책 <독립정신>에 실린 한복차림의 여성이라는 주장이있어

그러나 어느것이 진짜 명성황후 얼굴인지는 모른단다 그래서 우린 명성황후를 본 사람에 말을 듣고    상상할수밖에없어

개화파의 중심 인물로 철종의 사위였던 박영효눈 이렇게말했어

키는별로크지않으나 , 조선부인치고는 작지 않았다 . 살은찌지않았고 오히려 날씬한편이며 얼굴도 갸름하였다 . 눈은 가늘고 눈끝이 위로 치솟아 언뜻보기에 부드러운 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험한인상은 아니다 .조선부인치고는 표정이 풍부하여 예쁜축에들었다 . 그리고 이마의 옆쪽에 한치정도의 종기 흉터가있는것으로 기억된다

또 을미사변직전에 고종과 명성황후를 네번이나 만난 영국인 지리학자 비죱은 이렇게 말했어

왕비는 마흔살이 넘은듯하고 퍽 우아한 자태에 늘씬한 여성이었다 머리카락은 반짝반짝 윤이나는 칠흑같은 흑발이였고 피부는 너무도 투명하여 꼭 진줏빛 가루를 뿌린듯 했다.아름답고 풍성하며 주름이 많이잡힌 남빛의 긴 치마를 입고있었다 대화가 시작되면 특히 대화에 내용에 흥미를 갖게되면 왕비의 얼굴은지성미로빛났다.

자 우리도 명성황후의 얼굴을 상상해보자

 

이책을 읽고나서 실망감 , 분노감이 느껴졌다 . 실망한것은 당당하게 죽었을거라 생각했던 명성황후가

우리가 알고있는 그 죽음이 아니여서 조금?실망하였다. 또 분노감은 복잡한 국제때문에 왕비를 죽이다니 ....

일본인들을 도저희 용서할수가없다 . 그리고 명성황후의 얼굴조차모른다니 .

얼굴을 모른다는게 얼마나 안좋은지 모른다 .

명성황후가 이런 죽음을 받고 얼굴조차몰라 미래에서는 사회시간에 명성황후 얘기를 지워버리는건 아니겠지 ?

괜한 고민이라고도 생각하지만 ... 어쨋든 이책을 읽고나서 좀더 사회에 흥미가 생긴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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